폴 고갱의 작품으로 「노란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한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1889~1890, 38×46cm, 개인 소장
반 고흐가 이십 대를 훌쩍 넘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면 그의 절친한 친구 고갱은 한술 더 떠 서른다섯 살에 미술계에 입문한 늦깎이 화가다. 고갱은 화가가 되기 전에 증권브로커 일을 하면서 아마추어 화가지망생 신분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인상파화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컬렉터가 되기도 했다.
화가가 되기 직전 고갱의 그림실력에는 다소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아마추어 화가지망생치고는 수준급의 회화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증권브로커 직업을 그만두고 기성화가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더군다나 고갱은 이미 삼십대를 훌쩍 넘긴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폴 고갱 작「노란 색의 그리스도」, 캔버스에 유채, 1889, 92×74cm, 뉴욕 올브라이트-
고갱은 결국 직업화가로의 길에 들어섰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생활은 날로 궁핍해져 갔고, 작품 활동도 아마추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그림을 찾는 컬렉터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절망감은 헤아릴 수 없이 컸다. 고갱도 친구인 고흐처럼 꾸준히 자화상을 그렸다. 모델을 사서 그림을 그릴 형편도 못 됐거니와 습작에 자화상만큼 좋은 소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갱의 자화상은 다른 화가들의 자화상과는 분명 달랐다.
그는 다른 인물에 자신을 이입시켜 자화상을 즐겨 그렸다. 그의 자화상에 등장한 인물로는 예수그리스도와『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이 있다. 또 악당으로 전락한 천사 루시퍼도 보인다. 노란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한 자화상은 자신의 작품인「노란 색의 그리스도」와「기괴한 모습을 한 고갱」이라는 작품을 함께 병치시켜 완성한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마흔두 살의 고갱은 아직 화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는데, 급기야 아내와 자식하고 떨어져 지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고갱은 방값이 싼 파리근교를 전전하다 브레타뉴에 위치한 퐁타방이라는 시골마을에 머무르게 된다.
-풀 고갱 작「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캔버스에 유채, 1888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그는 이 마을에 있는 트레말로 성당에 걸린 그리스도 상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그 모습을 곧바로 캔버스에 옮겼다. 이 그림이 바로「노란 색의 그리스도」이다. 고갱은 핍박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면서 처량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예수 못지않게 커다란 감흥을 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듯하다. 「노란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한 자화상」에 그려 넣은 또 다른 자화상인「기괴한 모습을 한 고갱」도 매우 이색적이다. 도자기조각인 이 작품의 원본을 보면 모델에 귀가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비슷한 시기에 만든「두상 모양의 물 주전자 자화상」에도 역시 귀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 작품에는 얼굴주변에 피까지 흘러내린다. 많은 미술 사가들은 고갱이 만든 이들 조각 작품을 두고 고흐의「귀를 자른 후의 자화상」을 언급한다. 19세기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고흐의 귀 절단 자해소동 현장에는 고갱이 있었고, 이로 인해 고갱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고갱은「노란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한 자화상」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한 자신과 기괴한 모습을 한 자신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귀가 잘린 처절한 자아를 그리스도의 모습을 한 자아를 통해 구원받고자 한듯하다. 자신을 악마 루시퍼의 모습으로 묘사한「후광이 있는 자화상」은「노란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한 자화상」과 소재만으로도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폴 고갱의 작품「타히티의 여인들」-
이 그림은 고갱이 마흔한 살 되던 해에 그린 것이다. 뚜렷한 윤곽선을 지닌 넓은 평면에 강한 색채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높였다. 하늘로부터 퇴출당한 대천사이자 악마인 루시퍼의 모습을 한 화가의 인상은 마치 캐리커처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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