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를 여행하면서 프랑스는 역시 화가의 본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프랑스에서 활동한 유명한 화가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조금 더 들려주어야 할 것 같다. 인상파 화가인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1853년 네덜란드 남부의 그루트 준데르트에서 존경받는 목사 테오도르의 6남매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흐의 부모는 첫 아이를 낳았으나 곧 죽고 꼭 1년 뒤 같은 날 고흐를 낳자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지어 주었다. 첫 아들의 대리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생 출발이었다. 모네가 위대한 화가가 되기까지 고모의 극진한 보살핌이 있었듯이 고흐는 네 살 아래의 동생 테오의 보살핌으로 화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고흐의 가족 중에는 미술과 관련한 사람이 많이 있다. 외사촌인 안톤 모브(Anton Mauve, 1838~1888)는 네덜란드 헤이그파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유명한 화가였고, 세 명의 숙부가 화상(미술품 판매상)이었으며, 평생의 후원자인 동생 테오 역시 화상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레 베스노 마을」1890, 캔버스에 유채-
-빈센트 반 고흐 1889년제작 고흐의 방( 1853~1890년)오르세 미술관, 파리기법 캔버스에 유채-
고흐는 열여섯 살 때 첫 사회생활을 구필 화랑에서 시작하였다. 그의 우울한 인생은 화랑이 번창을 거듭하여 런던지점으로 발령받아 갔다가 거기서 첫사랑을 하게 되고 실연을 당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어 파리지점으로 전근 가서 얼마 안 되어 해고당하였다. 고흐는 신앙심이 열렬했고 희생정신도 강했다. 그래서 187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단기 목사양성과정을 수료한 뒤 벨기에 남부의 탄광지대인 보리나즈의 부목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전도에 몰두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탕기(Tanguy) 할아버지」-
그러나 너무 진보적이고 과격한 선교태도로 동료목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대중의 이해도 받지 못하다가 마침내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신앙심은 늘 그의 삶의 바탕이 되어 불쌍한 사람을 보면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부지런한 삶이 그림의 모티브가 된 적이 많았다. 임신 중인 병든 창녀 시앤을 만나 동거한 것도 그의 이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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