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와 함께한 말레이시아 여행

5.말레이시아의 약사(略史)

달리는 말(이재남) 2020. 2. 16. 10:53

말레이시아의 약사(略史)

 

말레이반도 부분과 싱가포르를 합쳐서 보통 말라야(Malaya)라고 부르는데 역사적으로 보아 말라야와 보르네오섬의 사라와크주와 사바주 사이에는 관계가 거의 없었다. 말레이반도에 최초로 생긴 왕국은 4, 5세기경에 발흥했던 말레이인의 불교국가였던 북부의 란카수카왕국이다. 9세기가 되면서 역시 불교국가였던 수마트라의 스리비자야왕국이 반도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13세기에는 수마트라에서 건너 온 말레이인의 일족이 싱가포르에 투마세크왕국을 건설하였고, 14세기에는 힌두교국가인 사바의 마자파히트왕국이 말라야 전체를 지배하였다. 이 무렵 아랍상인에 의하여 이슬람교가 전해지고, 1405년 투마세크왕국의 후예가 세운 말라카왕국은 말라야의 여러 토후국 외에 말라카해협을 넘어 수마트라의 동부까지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1511년 포르투갈인의 침공으로 말라카왕국이 멸망한 후 1641년 네덜란드의 말라카점령을 거쳐, 1786년 영국의 페낭 점령에 이르고, 드디어 영국의 주도권이 확립되었다. 영국은 20세기 초까지 말라야의 여러 토후국과 전략상의 요충을 모두 지배, 식민지경영을 진척시켰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아공입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아공입구

 

중국인·인도인 노동자를 끌어들여 행한 고무·주석 산업의 개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태평양전쟁 때에는 일본에 점령되어(19421945), 중국인을 중심으로 많은 주민이 살해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영국의 보호 하에 들어갔으나, 1957831일 싱가포르를 제외한 11개 주가 통합, 말라야연방으로 독립을 이루었다.

19639월에는 헌법을 제정하고, 싱가포르·사바·사라와크를 합쳐서 말레이시아가 성립되었으나, 2년 뒤 싱가포르가 탈퇴,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바와 사라와크는 15세기경부터 브루나이왕국의 일부였는데 사바는 18세기 초에 필리핀 술루의 술탄(Sultan)에게 할양된 후, 18세기 후반에 영국의 북부보르네오 특허회사의 소유지가 되었다.

사라와크는 19세기 중엽부터 60년에 걸쳐 영국인 브루크가 브루나이의 술탄에게서 할양받은 지역은 브루크왕국이었다. 사바와 사라와크는 모두 1942년부터 3년간 일본에 점령당하였고, 종전 후 1946년부터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더니 1963년에는 말레이시아연방에 가맹하였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아공

 

대외적으로는 우경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7년 유엔에, 1970년에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19709월의 비동맹수뇌회의에서는 동남아 중립화 안을 제의한 바 있다. 복잡한 민족 구성과 이에 따르는 민족 사이의 경제활동 차이는 오늘날 말레이시아 국내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문제는 거의 모든 정당이 민족적 기반위에 설립되고 제각기 자기민족의 이익옹호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효과가 없는 것이 많으며 반면에 외국자본과 결탁한 화교자본은 두드러지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태는 말레이인의 불만을 제고하여, 19695월에는 대대적인 반()화교폭동이 발생하였다. 외교정책에 있어서 이 나라는 비동맹·중립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중심으로 한 지역협력강화 및 이슬람제국과의 유대강화를 기조로 삼고 있다. 또한 공산제국과의 우호관계유지에도 노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메르대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L쌍둥이 빌딩의 야경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이슬람 Art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