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일주여행

발칸반도 일주여행(12)-발칸전쟁을 일으켰던 장본인, 불가리아

달리는 말(이재남) 2015. 6. 22. 07:25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국경선초소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브 차르베츠언덕에서 바라본 시내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브 차르베츠언덕에서 바라본 시내

불가리아 벨리코투르노브 차르베츠언덕에서 바라본 시내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건축물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온천수를 받는 곳)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러시아정교회

 

발칸전쟁을 일으켰던 장본인, 불가리아

 

강화조약에서의 영토분배를 둘러싸고 발칸동맹내부에 대립이 심화되자, 1913년 6월 29일 불가리아가 돌연 세르비아와 그리스를 공격함으로써 제2차 발칸전쟁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몬테네그로·세르비아·그리스·루마니아·터키 등이 불가리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 결과 불가리아는 연전연패하고, 7월 30일부터 부쿠레슈티에서 강화회의가 개최되었다. 8월 10일 부쿠레슈티조약이 성립되어 불가리아는 도브루자를 루마니아에게 나누어주고, 마케도니아를 그리스와 세르비아에게 나누어주었으며, 카바라 일대를 그리스에 넘겨주었다.

불가리아는 제1차 발칸전쟁을 통해 획득했었던 영토를 모두 잃었기 때문에 세르비아를 원망하게 되었고 러시아와도 사이가 멀어졌으며, 이것이 원인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오스트리아 측에 가담하게 되었다. 발칸전쟁에 의해서 발칸제국 간의 대립은 점차 격화되었고, 내셔널리즘이 팽배한 제국들은 유럽대륙으로의 영토를 확대하려는 다툼 때문에 이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

 

다뉴브 강을 경계로 루마니아와 접하고 있는 불가리아

 

불가리아는 사회주의국가이면서도 비교적 풍족하게 살았던 나라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조용하게 혁명이 일어났고, 현 정부도 공산당시절 간부로 있었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통스탈린 추종 국가이며 러시아가 쓰는 키릴문자를 만들기도 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조용하고 멋스러움이 넘치는 불가리아. 유럽에서 동방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불가리아의 조상들은 원래 아시아평원을 주름잡던 기마민족이었으나 비록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비옥한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과 알맞은 기후의 혜택을 받고 있는 이 땅에 정착하면서 농업국가로서 터전을 잡아왔다. 그 덕분에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80%나된다. 그동안 유럽과 터키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78년에야 러시아의 힘을 빌려 독립을 얻었으므로 러시아와의 관계는 각별하다.

그런데 이 나라는 산맥과 고지대가 많아 땅덩어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발칸반도의 동쪽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불가리아는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은 나라다. 북쪽으로는 다뉴브 강을 경계로 루마니아와 접하고, 서쪽은 유고슬라비아, 남쪽은 그리스 및 터키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약 11만 1000로 남한보다 약간 큰 정도이고, 인구는 약 897만 명으로 동유럽에서는 알바니아 다음으로 적다. 국토의 중앙을 동서로 평균표고 2500m의 발칸산맥이 달리면서 북쪽의 도나우대지와 남쪽의 트라키아평야로 국토를 양분해 놓았다. 전반적으로 사계가 뚜렷하며 온난하여 4계절이 분명하지만 지역에 따라 온도차가 심하다. 연평균 기온은 발칸산맥의 북쪽 도나우지역이 10℃, 남부의 트라키아평야는 13~14℃ 이다.

불가리아는 서구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양적인 예법을 찾아볼 수는 없다. 집을 방문할 때에는 이 나라사람들은 대개 선물로 꽃을 가지고 가는 것이 보통이다. 꽃은 사기도 쉽고 가격도 적당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언어로는 불가리아어가 공용어다. 불가리아어는 남 슬라브어 군에 속하는 언어로서 언어인구는 약 750여만 명에 이른다. 문자는 소련과 동구권에서 사용되고 있는 키릴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불가리아인의 국민성은 대체로 온순하며 성실한 편이나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 있고 또한 동구, 서구, 남부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관계로 예로부터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보호본능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강한 자존심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오랜 공산정권 기간 동안 외부와는 단절된 생활을 해온 관계로 성격이나 일처리에 있어서 폐쇄적인 면을 나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국민성을 읽을 수 없다. 인구의 약 3분의 1정도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 중 73% 정도가 불가리아정교신자이고 가톨릭 및 개신교신자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오랫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이슬람교신자수도 24% 정도에 달한다. 불가리아에서는 머리를 끄덕이면 No, 가로 저으면 Yes라는 뜻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부쿠레슈티를 출발하여 불가리아의 국경을 통과하여 점심식사를 하려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갈 때까지 인솔자 한경순양은 E.U(유럽연합)와 집시에 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었다.

일반적으로 T.C(Tour conductor : 인솔자)들은 현지가이드처럼 여행하고 있는 장소나 여행상식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한경순양은 가는 곳마다 필요한 내용을 너무나 자상하게 설명해주어서 알고 있는 내용도 확인하는 결과가 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불가리아로 건너온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는 장소 벨리코투르노보로 향하여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길을 막아선다. 무슨 사고가 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