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생명력이 넘치는 아프리카(22)-짐바브웨 쪽의 빅토리아폭포

달리는 말(이재남) 2014. 11. 7. 05:47

                                                             

 짐바브웨의 현실

 

짐바브웨는 아프리카대륙 동남부에 자리한 내륙국으로 위도 15.30∼22.30 ,경도 25∼33.10 사이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잠베지강, 남쪽으로 림포포강으로 구분되어 있고 남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동으로는 모잠비크, 북서로는 잠비아, 서쪽으로는 보츠와나와 접하고 있다. 면적은 약390,759㎢으로 이는 한반도의 1.8배에 달하는 넓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1/4 이 1,000m 이상의 고원지대를 이룬다. 옛 이름은 Southern Rhodesia(1911∼64)인 남부 아프리카의 대륙국이다.

수도는 하라레(옛 이름은 솔즈베리)이고,  이곳의 기후는 위도 상으로는 열대지역에 속하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에 있기 때문에 기후는 아열대성을 나타내어 온난하고 습도도 낮아 쾌적하다. 오랜 기간의 내전과 유엔 및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로 국가 경제가 피폐,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로 88년부터 투자진흥 센터 설립과 재정 적자 축소, 수입 자유화 등 개혁 정책을 추진 , 1991년부터 시장 경제도입 5개년 계획을 전개하고 있다.

이 나라는 실업, 인플레이션, 만성적 외화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가 전반적인 국가경제회복을 저해하고 있다. 짐바브웨는 비교적 발달된 제조업, 대규모의 상업영농, 다양한 광물자원, 간선도로, 철도, 전력설비 등 발달된 사회간접자본과 현대화되고 있는 금융, 유통시스템, 양질의 노동력과 비교적 높은 수준의 행정능력 등을 갖추고 있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남아공 다음으로 산업화의 기반이 구비된 남부아프리카 내륙 국가들의 물류 중심 국가에 속한다. 인구는 약 1300만 명으로서, 97년도 국내총생산(GDP)은 미화 86억불로서, 1인당 GNP는 미화 약 714불 수준이나, 짐바브웨 내 약 7만 명의 백인 소득은 1만 불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전체인구의 70%는 농촌지역에 3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IBRD 기준에 의하면, 인구의 약 15∼20%가 중산계층이며, 1%미만이 상류계층(Elite)을 차지하고 있다. 연간 교역규모는 1997년 기준, 수출 25억불, 수입 27억불로 총 52억불 수준이며, 2억불의 무역적자를 실현. 1990년 경제 자유화 및 개방화 정책에 따른 경제개발계획 추진으로 기계류 등 자본재 수입이 점증하고 있다.

주요수입품목은 기계류 및 운송장비(42%), 기타 제조업(23%), 화학제품(16%), 연료(12%)를 들 수 있고, IMF 원조중단 등으로 인한 외환부족사태 악화 및 정부재정 적자확대로 연 70%대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60%대의 고 실업률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2000년 8월에는 심각한 외환부족으로 인한 원유수입부족으로 경제활동의 상당부문이 마비되고 흑인재향군인들의 백인소유농장에 대한 무단점거로 사회.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됨에 따라 외국자본투자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국토면적 39만㎢ 중 가경농지는 50%이며, 북동부 고지는 농경지, 남서부 저지대는 목초지로 적합하다. 이곳은 여타 아프리카 제국과는 달리 농업의 GDP 점유 비중이 14∼15% 불과 백인소유 농장이 짐바브웨 전체 농업 생산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옥수수, 엽연초, 면화가 주 상품이며, 축산, 농도 활발하고, 담배, 면화, 설탕, 커피, 밀, 콩 등 주요작물은 자본집약적인 백인 상업농장에 의해 재배한다. 브라질 및 미국에 이어 세계 제 3위의 담배 수출국이며,1990년 세계 담배 교역의 7%를 차지한다.

 

짐바브웨 쪽의 빅토리아폭포

 

2시간 정도의 폭포구경을 마치고 다시 국경을 넘어 짐바브웨에 있는 Rainbow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 젖은 옷을 갈아입었더니 한결 개운하다. 잠시 호텔 룸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7시에 호텔 현관에 모여 보마식 저녁식사를 하려고 Boma레스토랑이 있는 곳에 차량으로 옮겨갔다. 아프리카전통 여러 부족의 춤과 전통음악을 함께하는 공연을 감상하면서 악어, 영양, 타조, 코뿔소, 버펄로, 누 등 야생고기로 바비큐 한 음식을 풍부하게 갖다가 먹었다.   

또한 그 곳에서는 목각인형을 비롯한 기념품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기념으로 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식사를 마치자 레스토랑으로부터 전용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짐바브웨는 7년간의 독립투쟁을 거쳐 1980년에야 독립을 하였으나, 독립전쟁으로 기간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복구 작업이 진행 중에 있는 실정이다.  인구 가운데 75%를 차지하는 Shona 부족과 18%의 Ndebele 부족으로 크게 나뉘며 백인은 전체인구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가 공용어이기는 하지만 두 부족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여행을 시작한지 어느새 9일째 되는 날 아침이 밝아오니 뭔지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더해간다. 5시 반에 모닝콜이 있어 준비를 하고 6시 반에는 호텔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아침식사를 했다. 빵 종류와 고기와 야채를 갔다가 먹고 나왔다. 7시 반에는 호텔을 출발, 빅토리아폭포에 도착하기 전에 무려 1500년이나 됐다는 바오밥(Baobab)나무를 보려고 갔다. 이 나무는 신의 저주를 받아서 뿌리가 뽑힌 채 영원히 땅 아래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는 3그루의 바오밥 나무가 서 있었는데, 나무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열매는 맛이 있어 이 나라사람들이 잘 먹는다고 Stanlly가 설명을 해준다. 그 나무를 배경으로 여러 컷의 기념사진을 찍고 빅토리아국립공원으로 향하였다. 폭포입구에 내린 일행들에게 인솔자 신상진씨는 우의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비아 쪽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게 강 건너로 보이는 폭포를 관망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인솔자의 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국립공원에도 영국탐험가「D.리빙스턴」의 동상이 높게 서있다. 거의 모든 일행이 비옷을 입지 않고 공원입구를 통과하여 1708m나 되는 폭포관망의 길로 들어갔다. 인솔자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폭포소리가 기계음 같기도 하고 사자의 포효 같기도 한 묘한 여운을 가진 굉음이 물안개로 뒤덮인 수풀의 지축을 흔들어 대고 있다. 동시에 물보라 벽이 공중으로 305m 이상 튀어 올라갔다가 잠비아의 리빙스턴동물보호구역 쪽에서 심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거센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빅토리아폭포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물보라 때문에 우산을 받쳤는데도 불구하고 옷을 적시고 앞이 선명하게 보이질 않아 구경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렇게 관망하기에는 좋지 않은 조건임에도 무려 1708m나 되는 폭포관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끝까지 걷고 또 걸어서 구경도 하고 사진촬영 하는데 약 2시간이나 걸렸다.
다시 공원입구로 나올 즈음에는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서 금방 전용버스를 타고 호텔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정리하여 가방을 끌고 호텔현관에 모인 시간은 10시 5분이다. 그리고 전용버스를 이용해 빅토리아폭포 공항으로 달려가 출국수속을 했다. 부칠 가방은 모두 모아서 신상진씨가 그룹으로 처리하고 임국심사대를 거쳐 탑승대기실로 들어갔다.
워낙 가난한 나라라서 공항의 화장실은 물이 나오질 않으니 냄새가 고약하다. 그뿐인가? 항공권의 좌석번호를 볼펜으로 수기했다. 원래 우리가 탑승한 항공기는 공항을 출발할 예정시간이 12시 40분이었으나, 35분이나 앞당긴, 12시 5분에 활주로를 벗어나 출발한다.

폭포를 바쁘게 구경하느라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배가 고파왔는데 비행기가 고도를 잡자 곧 음료수와 점심식사가 제공돼 맛있게 잘 먹었다. 1시 25분경 안스마츠국제공항에 내려 짐 가방을 찾아 세관을 통과, 밖으로 나오니 낯이 익은 유정화(gloria)양이 우리를 반가이 맞는다.

 

짐바브웨에서 바라본 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에서 바라본 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에서 바라본 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에서 바라본 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에서 바라본 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에서 바라본 빅토리아폭포

짐바브웨의 천년 이상된 바오밥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