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주여행

이탈리아 일주여행(35)-「팔라티누스 언덕」과「포로 로마노 (Foro Romano)」

달리는 말(이재남) 2014. 8. 27. 07:15

 이탈리아 로마 포로로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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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티누스 언덕」과포로 로마노 (Foro Romano)

 

이제 「포로 로마노를 향하여 달려갈 차례다. 캄피돌리오 광장의 세나토리오 궁 뒤 쪽 좌우에 설치된 테라스에서 유적지의 장관을 보는 것이 좋다며 우리를 골목길로 대리고 올라갔다.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베네치아광장에서 콜로세움 쪽으로 가는 길에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고대 로마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공회당의 유적지이다. 처음에는 변두리 성의 사람들이 모이던 시장터였다가 하수도로 만들어진 BC 6세기경부터 차츰 상점, 건물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점점 도시의 기능이 충실해져 상업, 정치, 종교 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었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다.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서기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Bcilica Aminlia)와 시저 신전(Templum Caesar), 원로원(Curia),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신전, 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현재의 포로 로마노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던 곳을 발굴한 것이란다. 눈앞에는 온통 붉은색 규격벽돌을 아주 빈틈없이 단단하게 쌓아올린 듯 두꺼운 벽체천지다. 문과 벽감이 있었던 곳에는 아치형구조로 보였다. 저렇게 견고한 구조였으므로 아주 오랜 세월을 버티고 서서 현재에 이르렀으리라는 데 생각이 머문다.

로마건국전설에 의하면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가 처음 도시를 세운 곳이 바로 이곳 「팔라티누스 언덕」이란다. 그때가 기원전 753년으로서 초기 정치형태는 물론 왕정이었다. 영어로 왕궁을 뜻하는 팰리스(Palace)는 팔라티누스의 어원이다. 좁고 긴 광장에는 조각난 대리석기둥들이 흩어져 있는 로마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곳은 세계를 재패했었던 로마의 정치와 경제·문화가 역동적으로 펼쳐지던 곳이었다. 세나토리오 궁 뒤쪽 좌우에 설치된 테라스에서 내려가 포로로마노거리를 따라 첫째 번으로 마주치는 것이 기원후 367년경의 델리데이콘센티 건물의 주랑현관이다.

바실리카 에밀리아는 로마에 세워진 둘째 번 공회당으로 사법, 금융, 상업 등의 거래를 하였던 공공건물로 서기 410년에 서고트 족이 로마를 점령할 그때당시 화재로 일부가 소실된 건물이다. 현재 원로원은 바실리카 에밀리아의 북서쪽에 있는 4층 벽돌 건물로 BC 7세기경에 세워졌으며 높이 20m의 건물로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원로원 앞에 있는 루스투름은 고대 로마인들이 연설을 하던 곳이었으며 이곳에서 조금 내려 가다보면 로마시대 가장 중요한 신전이었던 사투르누스의 신전이 있다. 포로 로마노입구 동쪽에 있는 거대한 신전은 막센티우스 신전이다. 308년 막센티우스 황제가 짓기 시작하여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완성하였다. 아우구스투스신전 옆에 있는 산타 마리아 안타쿠아 성당은 포로 로마노에 있는 가장 오래된, 사적가치가 가장 높은 기독교들의 기도하는 곳이었단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니 오후 시간이라서 역광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그냥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찍는 위치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몇 컷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했다. 카메라의 모니터에 선명하게 잡히는「팔라티누스 언덕」으로부터 콜로세움은 가깝게 느껴져서 촬영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이었던 것 같았다. 유럽의 도시마다 그렇듯이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문화재고 골동품이다. 옛것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