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여행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의 여행(14)-실크로드 관광의 핵심, 부하라

달리는 말(이재남) 2013. 7. 15. 07:28

                                            

고대 이슬람문화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부하라(부하라왕이 살던 성터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아르크성, 포이칼리인)

고대 이슬람문화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부하라(부하라왕이 살던 성터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아르크성, 포이칼리인)

   부하라 실크로드의 중심상가 거리

부하라 실크로드의 중심상가 거리의 상점

부하라 실크로드의 중심상가 거리의 상점

부하라 실크로드의 중심상가 거리의 노점상

      부하라 실크로드의 중심상가 거리의 노점상-모자를 흥정하여 샀다.

 부하라의 12세기 때 건축된 마고키 아타리모스크

부하라의 12세기 때 건축된 마고키 아타리모스크

이슬람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자 부하라의 상징인 칼랸 미나레트                                                              

부하라의 바자르(시장)

부하라의 바자르(시장)                                                                                                         

부하라의 구도심                                                                                                             

부하라의 구도심

                                                                                                           

 

실크로드 관광의 핵심, 부하라

 

 

볼러하우스 건물 앞쪽에는 조그마한 호수가 하나있었는데, 그곳에서 낚싯바늘을 드리우고 앉아있는 강태공도 눈에 뜨인다. 연못을 지나니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있는 정원이 있다. 그 꽃밭 바로 큰 도로 저편으로아르크성이 보였다. 성곽은 7세기에 축성된 것을 몇 번 개축한 것으로 18세기에 부하라 왕이 살던 성터로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아르크 성은 부하라 칸국의 칸들이 1920년 러시아군대에 의해 아프간으로 쫓겨 가기 전까지 거주했던 곳으로 성내에는 모스크, 감옥, 거실 등이 있다. 부서진 성터를 보수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아르크 성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갔더니 옛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거리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 거리의 길 양편에는 오늘날에도 상점과 노점상이 보였다. 필자의 아내와 김지영 양은 모자를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노점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러시아사람들이 추울 때 쓰는 털모자를 구입하려고 값 흥정을 하느라, 일행들과 잠시 떨어져 있었다. 결국 적당한 가격에 밍크 모자를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두 사람은 만족스런 듯 행복한 모습으로 일행과 만나 관광을 재개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을 합쳐 놓은 나라의 크기였던, 9~10세기 부하라왕국의 수도부하라는 한마디로 "실크로드 관광의 핵심"이다. 부하라를 향하여 달려오는 곳곳에 아름드리 뽕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어 이곳이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음을 실감케 했었다.

어떤 젊은이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한국의 안산 공장에서 3년간 일을 했다고 말을 걸어왔다. 우즈베키스탄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하기에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숫자만 놓고 봐도 십 일만 여명으로 이들이 상위순위를 기록하고 있지 않던가!

이들에게도 가난을 벗고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물결은 거세게 일고 있다.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벤치마킹한 것 그것은 부동산에 대한 투자로서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산스크리스트어로 "불교사원"이라는 뜻을 지닌 부하라는 8세기 이후에는 중앙아시아 최대 이슬람종교도시로 바뀌었다. 한때는 사원이 197곳, 신학교가 167곳에 이를 만큼 번성했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는 9~17세기에 건설된 모스크와 신학교인 메드레세, 원형으로 만들어진 미너렛, 옥색빛깔의 돔, 성벽 등 유적들이 잘 보존돼 있다.

특히 이 도시 부하라는 유적지가 밀집돼 있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유적지 마다 예외 없이 카펫, 스카프, 공예품 등 전통상품들을 팔고 있고, 고색창연한 사원, 성벽, 학교 등이 유적지에 입주해 관광객을 대상으로 마케팅에 나서는 등 실크로드상인의 후예임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칼란 미너렛』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칼란 모스크다. 1514년 칼란칸 왕조 아루크 칸에 의해 지어졌다. 미너렛은 기도할 시간을 알리기 위해 세운 높은 탑이다. 페르시아어로 "크다"는 뜻의 "칼란" 사원 옆 46m 높이의 미너렛, 1127년에 축조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흙벽돌을 달걀흰자와 낙타의 젖을 반죽해 쌓아올린 것으로 탑 꼭대기에 불을 밝혀 사막의 등대구실을 했다. 하지만 카라반에게 생명의 나침반 구실을 했던 것과는 달리 "죽음의 탑"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부하라 죄인들을 이 탑의 꼭대기에서 내던져 처형했다고 해서 "죽음의 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탑의 안으로 들어서면 나선형 계단이 있다. 탑 주변은 한줄기의 푸른 타일로 장식해서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칼란 미너렛은 13세기 칭기즈칸 침입 때에도 건재할 수 있었다. 그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마을 전체가 붕괴된 대지진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파멸을 몰고 다니는 칭기즈칸에게도 파괴되지 않은 것으로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칭기즈칸이 탑을 올려다보다 모자를 떨어뜨렸는데, 생각 없이 허리를 숙여 모자를 주우려던 칭기즈칸은 "누구 앞에서도 모자를 벗은 적이 없었는데, 이 탑이 내 모자를 벗겼다. 이 탑은 나의 머리를 숙이게 한 멋진 탑이므로 이 탑만은 무너뜨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 이 미너렛은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우즈베키스탄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부하라는 역사적인 사연이 많은 다양한 건축물들이 많다. 칼란 미너렛 쪽으로 나와, 골목 끝에 자리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마고키 아타리 모스크(Magoki Attori Mosque) 향했다. 이 모스크는 9세기에 지어졌단다.

건물의 모양부터가 다른 모스크와 많이 달랐다. 정문에 들어서니 낮고 굵은 8각형 몸체를 가진 독특한 첨탑 2개가 서있다. 이 첨탑의 꼭대기는 둥근 돔 지붕이 아니라 8각 돔 지붕이 얹혀있었다. 1860년의 지진으로 사원이 부서졌는데 돔도 함께 부서졌다. 지금 모습의 모스크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재건된 것이다.

카펫과 기도용 매트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 모스크는 부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었던 종교적인 유적지로서 불교와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의 유적이 같은 장소의 각각 다른 지층에서 발굴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 나라의 유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상인들이 있고, 이 상인들이 있는 곳에는 상품을 팔아 국가에 내야할 세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