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틱3국의 여행

발트3국과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핀란드의 여행(2)-성 이삭성당

달리는 말(이재남) 2013. 4. 13. 07:01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 광장의 기념품가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 광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주 성상 격벽의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필자부부)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성이삭 성당-주 성상 격벽의 모습

 

 

  도착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발트3국은 우리나라와 90일 무비자 면제협정체결이 되어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지만 러시아를 경유해서 갈 경유 들고 나는 관문이 러시아이기 때문에 2번 입국이 가능한 멀티 비자를 받아야한다. 물론 여행사를 통하여 받아두었었다. 우리나라와 5시간의 시차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20분이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필자는 준비된 전용버스를 타고 우리가 묵을 Moscow Hotel로 향했다. 차량들이 길을 꽉 막고 움직일 줄 모른다. 결코 먼 거리가 아닌데 12시 30분경에야 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짐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다음 날, 새벽 1시를 넘겼다.

이날 아침도 동녘의 해는 어김없이 밖을 훤하게 밝혀주었다. 7시에 모닝콜이라고 했는데 시차적응 문제 때문에 6시도 안 돼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필자부부는 밖으로 나와 호텔 옆으로 흐르는 네바 강 강가를 걷기로 했다. 호텔 밖 도로를 걸으며 어제 밤에 비가 내린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물차가 길에 물을 흠뻑 뿌렸나보다. 강가를 50분 정도 걸었다. 7시 반에 호텔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기에 시간에 맞춰 호텔에 도착했는데 아직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1층과 2층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1층 중앙에 무대를 설치해 놨다. 먹을 만한 음식은 많았다. 오늘 활동할 양의 음식을 충분히 먹어뒀다. 9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성 이삭성당          

 

호텔을 떠나 찾아간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표적 건축물, 「성 이삭성당」이다. 로마로 말하자면 성 베드로 성당이고, 파리로 말하자면 노트르담 사원에 맞먹을만한 성당이다. 200년 전 건축의 기록을 현재 우리가 자세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에게는 매우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성 이삭성당이라는 훌륭한 세계문화유산의 네바 강 쪽에서 바라보이는 북쪽 박공의 주제는 조각가 레무아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중앙은 무덤에서 일어나는 천사들로 둘러싸인 그리스도이며, 그 옆의 무덤을 지키는 군인과 놀라는 여인들이 있다. 박공 윗부분은 제자 요한의 동상이 있고, 왼쪽에는 베드로, 오른쪽에는 바울의 동상이 서있다. 성 이삭성당의 서쪽 박공의 주제는 조각가 비탈리의 작품으로 비잔티움 황제 테오도시우스에게 축복하는 성 이삭이다.

흔히 우리는 이삭성당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확한 명칭은 성 이삭성당이다. 왜냐하면, 이 이름의 이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믿음의 조상이지 정교나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인이 아니다. 따라서 성 이삭을 기념하는 이 성당의 이름은성 이삭성당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성 이삭은 보통 이삭 달마시안이라고도 불린다. 이를 볼 때, 성 이삭이 달마시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대제를 기념하는 건축, 조각, 성당이 즐비하다.

우선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부터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말에 표트르 대제 자신을 기념하는 도시라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생일인 5월 30일을 축일로서 기념하는 성 이삭을 위한 성당을 만들게 되었다.

기독교 역사상 그 수많은 더 유명한 사도들과 성인들을 뒤로 하고, 하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으로 오해받는 성 이삭이라는 수도승을 위해 성당을 지어야만 했을까? 그 의도자체가 불순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당시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표트르 대제의 구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의 성인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정교의 입장에서도 반대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황제는 정교 성인을 위한 성당을 짓고, 정교는 황제의 권위를 종교적으로 인정해 준 결과다. 종교와 정치가 결탁을 한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표트르 대제를 잇는 황제들마저도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성 이삭성당을 이용하게 된다. 성 이삭성당의 중요성을 간파한 황제들은 총 4번에 걸쳐서 성당을 재건축하게 되면서, 재건축을 할 때마다 성당의 규모는 점점커지고, 장식은 매우 화려해 졌다.

지금 필자가 바라보고 있는 성당은 4번째 건축한 성당으로, 1818~1858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지어진 것이란다. 이 40년간 성당과 역사를 함께한 황제는 알렉산드르 1세, 니꼴라이 1세, 알렉산드르 2세로 무려 3황제를 거치게 된다. 황제들은 이 성당 건축을 위해서 그 당시 러시아의 국력을 총동원했다.

자세한 공사내력은 현재의 그 웅대하고 화려한 이삭성당이 있기까지 전 세계 설계공모가 진행되었고, 연인원 40만 명이 동원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준보석 암석들과 대리석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입되었으며, 유럽의 수많은 건축가, 공학자, 화가, 조각가, 석수장이, 모자이크화가, 도금장이가 작업에 동원되었는가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는 공사 시작부터 끝까지 자문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덕분에 러시아는 건축, 공학, 미술, 장식 등이 예술작품과 관련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내며 러시아 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국력을 기울려 완성한 성 이삭성당은 오늘날 세계 3대성당으로 불리고 있다. 과연 신고전주의 양식을 채용한 성 이삭성당은 규모나 내부구조와 장식에 있어서 세계 3대성당이라고 일컬어 질만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성 이삭성당은 정교와 정부의 맹약을 확인해 주는 증표일 뿐 아니라, 표트르대제의 유지를 계승한 후대 황제들의 정통성을 확보해 주는 기념물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