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러시아여행

14.볼셰비키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순양함, 오로라호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7. 21:30

볼셰비키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순양함, 오로라호

 

          핀란드 헬싱키의 해변 호화유람선 실자라인

 핀란드 헬싱키의 해변 호화유람선 실자라인

 

                         

여름궁전의 관광을 마친 일행은 시내로 들어와서는 다시 한번 한국관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다. 맛있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피의 구원의 성당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곧이어 페테르대제의 요새라고 불리는 「죽음의 문」,「베드로의 문」을 돌아 나와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마지막 구경거리인 순양함 오로라호를 방문하였다. 볼셰비키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오로라호가 페테르대제의 오두막 부근, 「St. Petersburg」호텔 바로 건너편에 역사적인 순양함이 정박해 있다.

이 함정은 러일전쟁에 참가, 큰 역할을 당당하기도 했다. 순양함에 불과했었던 이 함정에서 1917년 10월 1일 오전 9시 40분에 함포 한방을 쏘아 올림으로써 러시아에서는 레닌을 선두로 볼셰비키혁명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육상전투를 위해 순양함의 대포만 떼어 사용하기도 하였단다. 전쟁이 끝난 후 현재 이곳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행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념사진촬영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강가

 

 

공공연히 상트페테르부르크 천도론을 들고 나오는 친(親)푸틴 세력들

 

그런데 특기할만한 문제 하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市를 러시아황제 페테르1세가 스웨덴의 침략을 막기 위해 건설을 시작한 날이 1703년 5월 27일이란다.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1712년 제정러시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그 후 3세기동안 찬란한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유럽 못지않은 아름다운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들었다. 그런데 제2의 페테르를 자처하는 이 곳 출신 푸틴대통령이 등장하였다. 300년 전 페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친(親)서방정책을 내세우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재건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에르미타쥐박물관, 시 발상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요새와 도심주요건물, 네바강을 가로지르는 「삼위일체」다리 등 거의 모든 교량, 대로, 그리고 이면도로까지 도시건설 300주년을 1년 앞둔 시점에 시내전역이 대대적인 공사장으로 변해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네바강변의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순양함(오로라호)

 

제정 러시아시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발전했는데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한 다음해 레닌은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다. 모스크바가 현대 문명화된 도시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고색창연하며, 두 도시는 정치?경제?문학과 예술분야에서 보수와 진보를 대변해왔다.

그런데 미로노프 의회의장 등 친(親)푸틴 세력들은 공공연히 상트페테르부르크 천도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소련시절 소련의 수도는 모스크바였지만 러시아의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돼야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제기하면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관광하면서 느낀 공통된 특징은 러시아 사람들은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게 분명한데, 화려한 건물들로 장식된 이들 두 도시는 화려하고 사치스럽다는 것이다.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과는 너무나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이 크고 화려한 대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옛 러시아 사람들은 얼마나 닦달 당했을 것이며, 얼마나 큰 짐을 져야 했을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헬싱키까지 가는 도중에 생긴 일

 

곧이어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국관을 나오면서 받아온 저녁식사 도시락을 각자 챙겨 전용버스에 실었다. 그리고는 핀란드의 헬싱키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헬싱키 역으로 이동하였다. 16시 48분 출발하는 기차 안에서는 정해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아직도 구소련의 사회주의국가의 잔재가 남아있어 그 시대의 이미지를 벗어버릴 수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나라나 도착해서 처음 얼마동안은 생소함으로 당황하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피터앤폴 요새(피터 대제가 토끼섬에 세운 요새로서 종루의 높이는 122.5m 1712년 7월 8일 석조 대성당 착공)


러시아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러시아 사람들의 무표정, 무관심, 무반응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사람들은 웃지를 않는다. 옆을 보지도 않는다. 이 모스크바 사람들도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고 한다. 공산당치하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여유가 있고 부드러웠는데 물가가 폭등하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했던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도시가 되면서 사람들이 변했다. 각계각층에 마피아들이 설쳐 정치, 경제를 이들이 장악하고 있고 지도자는 무능해서 민생은 말이 아니다.

해가 지면 주택가에는 길에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여기서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걸로 알려진 한국이나 일본여행객 또는 학생들은 강도들의 좋은 표적이 된다. 러시아의 곳곳에서는 경찰에게 잘 못 걸리면 엉뚱하게 생트집을 잡아 결국은 돈을 뜯어낸다고 한다.

러시아와 핀란드의 국경 역에서 여권검사를 받았다. 죄인을 다루듯 한참동안이나 사진과 실물을 바라보며 대조하는 러시아경찰의 눈빛이나 태도도 그랬다. 러시아에 입국할 때에 작성한 세관신고서를 출국할 때에도 작성하여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세관신고서를 받아 한참동안이나 살펴보고 난 후에야 신고서를 받아 가는 세관원의 태도로 보아 모두 다 구소련의 KGB요원을 연상하게 한다. 러시아식 권위주의가 아직까지도 단단히 배어 있는 것 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출발 핀란드 헬싱키행 열차

 

그 딱딱하고 무표정하게 굳어있는 모습과 말하는 태도는 우리일행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러시아를 지나오는 동안에는 언제 여권을 다시 보자고 할지, 또 무슨 서류가 부족하다고 내 발목을 잡는 관리가 나타날지 마음이 불편하다. 이 나라의 여행계획을 세울 당시 러시아비자를 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뒤따랐다. 그리고 입국할 때에는 입국자가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를 모두 신고하도록 했다.

출국할 때에도 가지고 나가는 돈의 액수를 적어서 제시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절차로 보아, 러시아가 여행하는데 아주 까다로운 국가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런데 러시아경찰과 세관원이 내리자 다음 역인 핀란드의 국경 역에서도 여권검사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 때에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어, 한국관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