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11.콘스탄티노플 개선문과 콜로세움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17. 07:20

콘스탄티노플 개선문과 콜로세움                                        

 

그곳으로부터 콜로세움을 관광하기 위하여 또 한참동안 걸었다. 그런데 전주에서 오신 김상건씨 부부와 그 외손자 상민, 외손녀 수민은 걷기가 무척 힘이 들었든 모양이다. 일행을 잘 따라오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 걸어오곤 했다.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고대유적과 현대적인 감각이 잘 조화된 로마의 거리를 걸으면서 가로수 잣나무들이 도로 가에 즐비하게 서있었음을 보았다. 이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 열매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열매보다 훨씬 컸다. 그러나 그 열매를 이태리사람들은 먹지 않는단다.

 

이탈리아 로마의 개선문과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의 개선문과 콜로세움

 

콘스탄티노플 개선문은 3개의 아치로 구성된 로마에서 가장 큰문이다. 기독교를 공인하기도 했고 군인통치자이었다는 콘스탄티우스 대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대제와 더불어 로마제국의 재건자로 높이 평가되었고 정치적 라이벌인 마크센티우스 황제를 패배시키고 승리한 기념으로 312년에 세운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개선문                 

이탈리아 로마의 개선문과 콜로세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완벽한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의 애뚜알 개선문은 이것을 보고 나폴레옹이 본떠서 건설했다. 이 개선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6000여명이 한꺼번에 목욕할 수 있었다는 카라칼라목욕탕과 아피아가도가 나온다. 벽면을 장식한 부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업적을 묘사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로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고대로마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큰 원형경기장이다.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 된 타원형건물이다. 1층은 토스카나식이고 2층은 이오니아식이며 3층은 코린트식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서쪽에 있는 콘스탄티노플개선문을 지나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옛 로마병사복장을 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원처럼 돼있는 곳에 나무그늘이 있다. 한참동안이나 이 그늘 밑에 앉아 쉬면서, 오늘 관광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눴다.

몸은 쉬어가자고 아우성인데 마음은 한시바삐 떠나자고 또 보챈다. 관광에 지치고 덥기도 하여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걸었다. 그러하여 도착한 서울식당에서 불고기백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이번에는 시 외곽에 세워둔 전용버스를 타려고 또 한참을 걷고 또 걸어야만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피렌체의 전경

 

여행 나흘째 되는 날, 이 날은 아침 일찍 즉 8시에 전용 버스를 타고 로마를 출발했다. 11시20분에는 목적지인 이태리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의 시가지를 가장 아름다운 구도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미켈란젤로의 광장에 도착하였다.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언덕)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언덕)

 

광장 중앙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복제품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오는 것만은 아니다. 미켈란젤로 광장이 유명한 것은 이곳에서 아름다운 피렌체의 전경을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노강과 그 위를 지나는 베키오 다리,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피렌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광장에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 그림을 판매하고 있는 화가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피렌체는 아르노강 연변의 교통로와 아펜니노산맥을 넘는 교통로의 요지이다. BC 2세기경부터 도시로 발전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2세기 무렵 모직물공업발전을 계기로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Europe의 상공업, 금융업의 중심이 되었다. 15세기 초부터는 메디치가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여 코지모 및 손자 로렌츠가 실질적으로 메디치가의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러다가 이태리 르네상스문화의 중심으로서 그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언덕)으로부터 내려다보이는 피렌체의 모습

 

메디치가는 르네상스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수많은 천재예술가를 후원하여, 르네상스를 꽃피우는데 일조를 했단다. 인간을 긍정하고 그 능력과 잠재력을 최대로 꽃피운 땅, 그래서 피렌체를 활짝 핀 「꽃의 도시」라고 한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인만큼 피렌체는 많은 천재들을 낳은 곳이고 물론 그때당시에는 단연 으뜸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외에 조토, 보티첼리 등 화가들, 미술 분야 밖의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등 이 도시가 낳은 거인들이고 그 수는 일일이 헤아리기가 벅찰 정도다.

그러므로 피렌체를 걷는 것은 개인과 천재의 관념을 선진적으로 발달시켜 중세 이래 인간의 자의식을 최초로 고도화한, 진정한 「인간의 땅」을 걷는 것이란다. 미켈란젤로 광장은 아르노강 남쪽기슭의 언덕 위에 조성된 광장으로 두오모성당을 배경으로 피렌체 전경의 사진을 찍기에 알맞은 장소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