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일본여행

오사카의 지리적 여건과 역사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8. 07:06

  오사카의 지리적 여건과 역사           

 

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로서 면적은 221.30㎢이고, 인구는 2002년을 기준으로 약 248만 명이다. 시의 지역은 우에마치 대지[上町臺地]와 요도가와강[淀川]의 삼각주로 이루어져 있다.  우에마치 대지는 오사카성(城) 부근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12km, 너비 2∼3km, 해발고도 20m의 대지이고, 요도가와강 델타는 요도가와강의 여러 분류인 신(新)요도가와강, 아지강[安治川], 시리나시강[尻無川], 기즈강[木津川] 및 남쪽의 야마토강[大和川]의 유역과 오사카만 연안을 포함하는 일대로 해발고도가 5m 이하의 저지로 이루어져 있다.

오사카는 크게 대형 건물과 상점이 밀집한 북쪽을 키타 오사카(북 오사카)라고 하고, 역사 유적이 많은 남쪽을 미나미 오사카(남 오사카)로 구분하기도 한다. 같은 오사카이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키타 오사카는 지하로 뻗어가는 거리와 네온사인의 홍수 우메다(梅田)는 오사카역 부근에서부터 도지마가와(堂島川) 부근까지를 말한다. 이곳을 오사카 사람들은 키타라고 부르는데 에도시대에 개발된 북쪽의 새로운 땅이라는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오사카(大阪) 시텐노지(四天王寺)

눈부신 지하상가가 잇달아 생겨나고 고층빌딩이 하늘 높이 솟은 거리, 한 구석에는 북적거리는 식당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고급 바와 클럽이 밀집한 소네자키신지가 있다. 바야흐로 키타 지역은 역사를 자랑하는 미나미 지구를 능가하는 대번화가이다. 미나미 오사카는 신사이바시 근방에서부터 소에몬초(宗右衛文町), 도톤보리(道頓堀), 센니치마에(千日前), 난바(難波) 근방까지 총괄하는 구역을 미나미라고 부른다. 다른 지구에 비해 오사카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점포가 많다.

쇼핑가는 신사이바시 부근에서 에비스바시 부근과 니지노마치(虹の町), 난바 시티이고, 환락가는 소에몬초와 센니치마에 등에 있다. 가장 오사카적인 기질을 대표하는 거리가 휘황찬란한 도톤보리이다. 오사카 제일의 쇼핑가로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점포가 줄지어 있는데, 쇼윈도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나가보리강에 걸려 있던 신사이바시는 이제 강의 매립으로 보도교가 되었는데, 쇼윈도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런데 지금은 난간과 가스등만이 옛 모습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오사카성


이곳에는 다이마루 소고 등의 백화점과 파르코 소니타워 등의 전문상점 및 고급품을 취급하는 갖가지 상가들이 이어져 있어, 하루 종일 쇼핑객이나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미나미의 번화가를 동서로 흐르는 것이 바로 도톤보리강이다. 인공으로 만든 강으로 1612년 야스이 도톤(安井道頓)가 이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사촌동생 도보쿠가 1615년에 완성시켰다. 일반적으로 도톤보리는 강의 남쪽 기슭을 말하는데, 예전에는 나니와자, 나카자, 가도자, 아사히자, 벤텐자 등 5개의 극장이 줄지어 서서 번창하던 곳이다.

이에 비해 도톤보리의 북쪽 기슭인 소에몬초는 환락가로 발달한 곳인데, 예능인들이 출입하는 고급 요정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지금도 남쪽 기슭의 도톤보리와 비교해볼 때 고급요정이나 카바레가 많이 산재해있다. 각종 오락을 즐길 수 있고, 거리 전체가 생동감에 넘치는 도톤보리는 오사카 유흥가의 중심이며, 오사카다운 분위기가 넘치는 거리이다. 난바 주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를 센니치마에라고 하는데, 예전에 다카라쓰카 가극과 나란히 인기를 끌었던 다이케키가 있었던 곳이다.

또 옛날과 마찬가지로 길가의 싸구려 노점상이 아직도 남아 있어, 옛 추억을 자아내게 한다. 난카이(南海) 전차의 난바역 주변 번화가로, 현재는 지하철 요쓰바시센(四つ橋線), 미도스지센(御堂筋線) 등이 교차하는 센니치마에도리에서 남북의 둘로 갈라지지만, 미나미에서 제일가는 음식점 거리이다.

 오사카의 신세카이(新世界)-전망대에 오르면 이런 전망이 펼쳐진다.

 

이렇게 난바가 번화하게 된 것은 오사카에 카페가 생기고, 그것이 미나미 주변에도 크게 유행했던 20세기 초였다. 이 시기에 난카이 터미널 빌딩과 다카시마야 백화점 등이 생겨 지금의 형태로 변모하였다.   삼각주 지대에는 주위의 소하천 외에 운하가 많이 굴착되어 있어 시역의 11.2%가 수역(水域)이다. 따라서 흔히 「물의 도시」로 불리고, 또 다리가 약 840개에 달하여 「다리의 도시」로도 불린다.
삼각주 지대에는 공장지대가 펼쳐져서 지하수를 많이 퍼 올려 쓰기 때문에 지반침하가 심한데, 특히 신요도가와강 하류 유역에는 1934년 이래 2.5m 가 침하한 곳도 있어 방조제(防潮堤)를 축조하였다. 기온은 1월 평균 4.5℃, 8월 평균 28℃, 연평균 15.6℃로 겨울에도 온난하고, 연강수량은 1,390mm로 일본에서는 적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서풍이 많이 불어 임해공업지대로부터의 매연에 의한 공해가 시역에 널리 미친다.

 

오사카의 건축물


고대에는 나니와(難波), 중세 이후에는 오사카(大坂) 또는 오사카(小坂)로 부르다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현재의 지명으로 고쳐졌다. 일본문화의 여명기인 아스카시대부터 세토나이카이와 수도 아스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을 이루어,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문화를 받아들이는 문호로서 발전하였다.

또한 그 시대를 전후하여 오진왕(應神王) 등 몇몇 국왕이 이곳에 왕궁을 조영한 일도 있다. 그 뒤 요도가와강에 의한 토사의 퇴적으로 항구의 기능을 잃자, 중세에는 시텐노사(四天王寺), 이시야마혼간사(石山本願寺)] 등의 문전(門前)도시로서의 명맥을 유지해 온 정도에 그쳤다.

 

               오사카성에서 촬영

오사카성에서 촬영

 


그러나 1583년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오사카성(城)을 구축함으로써 다시 활기를 되찾아 급속한 발전을 보였다. 도요토미 정권 멸망 이후 오사카는 도쿠카와 막부(德川幕府)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나, 요도가와강의 수운이 열리고 전국 각 영주(領主)의 쌀을 비롯한 물자교역지가 되어 상업도시로 발전하였다.

 일본의 제2도시, 오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