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일본여행

특색이 있는 거리를 만들고 있는 오사카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8. 07:47

 특색이 있는 거리를 만들고 있는 오사카

 

 

근대공업의 대명사이자 상공업도시인 오사카

 

 

그리하여 에도시대(江戶時代)에 이미 에도 및 교토(京都)와 더불어 3대 도시로 일컬어졌다. 메이지유신 후에는 재빨리 근대공업을 일으키고, 개항(開港), 축항에 의해 상공업도시로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하였다. 전형적인 상공업도시로 상업, 공업 이외의 산업은 극히 미미하다. 에도시대 이래의 상업도시로서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서, 도쿄와 더불어 일본을 동, 서 2개의 상권(商圈)으로 나누고 있다. 상업은 도매상의 지위가 매우 높다.

도매상가는 센바(船場), 시마노우치(島之內) 등 구시가지에 많고, 혼마치(本町), 도부이케상가(池筋)의 섬유, 도쇼초(道修町)의 약종(藥種), 마쓰야초(松屋町)의 과자, 완구, 니혼바시상가(日本橋筋)의 전기기구 등 동일업종이 동일지역에 집중하는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오사카 쥐라기 공원에는 2가지가 있는 데 롤러코스터와 배타기가 있다

 


한편 도매상가에 인접한 도지마섬(堂島)과 나카노섬(中之島) 등에는 금융기관, 무역상사가 있어 경제의 핵심지역을 이루고 있다. 또 한신(阪神)공업지대의 중심을 이루어 철강, 기계, 금속 등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섬유, 의류, 식품, 잡화 등 경공업도 활발하다.
공업지구는 북부, 동부, 서부의 3지구로 나뉜다. 북부지구에서는 면직, 염색, 방적, 제약, 화학공업, 동부지구에서는 기계부품, 완구, 모자, 안경 등의 공업, 서부의 임해지구에서는 철강, 금속, 기계,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이 활발하다.

도쿄와 더불어 일본의 2대 교통중심지이다. 신칸센(新幹線)을 비롯하여 철도, 지하철, 도로가 발달하여 교토와 나라(奈良), 고베(神戶) 등 인근의 도시 및 관광지를 연결하고 있다. 오사카항(港)은 부두설비가 갖추어진 근대적 항만으로 세토나이카이를 중심으로 국내항로 외에 외국항로의 화물선 출입도 빈번하다. 시역 밖의 북서쪽에는 오사카 국제공항이 있고, 오사카만에는 간사이(關西) 국제공항이 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 제2청사

 


오사카에는 교토, 나라 등의 인근도시에 비해 관광자원은 많지 않으나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인 만큼 유적지가 많다. 오사카성을 비롯하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의 하나인 시텐노사(四天王寺), 일본의 3대 민속제전의 하나인 천신제(天神祭)로 유명한 덴만궁(天滿宮) 등의 사찰, 신사(神社)가 있다.

한편 도톤보리(道頓堀), 센니치마에(千日前), 난바(難波) 등지를 포함하는 속칭 미나미(南)와 우메다(梅田新道)를 중심으로 하는 속칭 기타(北) 등지는 환락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밖에 미술관, 박물관 및 스포츠 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오사카는 한국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약 30만 명)인데, 특히 시(市) 동부의 이쿠노구(生野區)는 전국적으로 보아 한국 교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오사카(大阪) 덴포잔(天保山) 관람차는 전망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

오사카(大阪) 도톰보리(道頓堀) 리버크루즈

 

 

오사카 만으로 흐르는 요도가와의 하구에 있는 오사카는 한때 수많은 운하와 물의 도시로 『동양의 베니스』라고 할 정도였다. 이 운하는 오사카가 상업도시로 번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단다. 이제는 대부분의 운하가 메워졌으며 그 위에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며, 고속도로와 지하상가가 들어서 옛날의 정취는 찾을 길이 없단다.

역사적으로는 4세기부터 나니와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일본의 수도가 되었으나 특히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 성을 쌓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형성한 뒤 급격히 발전했단다. 그는 1536년 가난한 천민으로 출생하여 오다 노부나가 다음의 2대 장군으로 오사카성을 세우고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다.

오사카성은 1583년 일본 통일을 목표로 한 그가 세운 성으로 안정적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고자 했지만 그가 죽은 후 아들인 도요도미 히데요리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싸워 1615년 함락당한 성이기도 하다.  오사카성은 천하통일을 이룩한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구축했던 5층의 천수각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성곽이다.

이 성은 여러 번 개수했지만 그 위용은 아직도 제 모습을 지니고 있고, 5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린다. 우리는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에 올라갔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중국대륙을 왕래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오사카는 상업도시로서만이 아니라, 근대에 와서는 새로운 공업도시의 성격을 추가해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사카성

                     오사카성

 

 

 특색이 있는 거리를 만들고 있는 오사카

 

상업도시로서의 면모는 아직도 약, 섬유, 완구, 문방구, 전기 등 업종별 도매 상가가 각기 특색이 있는 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오사카는 비교적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북쪽의 기타와 오사카 토박이 적인 성격을 짙게 느끼게 하는 남쪽의 미나미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두 곳 모두 터미널을 중심으로 백화점, 쇼핑가, 그리고 오사카의 특징인 수많은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오사카는 도쿄에서 553㎞로 신간센 초특급 기차로 3시간, 비행기로는 55분 걸린단다. 또한 오사카성은 오사카 관광의 시발점이자 역사의 보고로서 하루 종일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곳이다.

오사카성(大阪城)은 대부분 파기되었지만 볼거리는 다양했다. 오사카성의 덴슈가쿠는 일본의 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생애와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서 역사 교육으로서도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었다. 맨 최상층인 8층에 올라가니 오사카공원이 한눈에 보이고, 먼 곳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3년간의 공사에 걸쳐 1586년에 쌓았다는 오사카성은 전란 때문에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버렸고, 현재의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재건된 것이며 과거의 성(城)에 비해 5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크기란다.

전 8층으로 이어진 천수각은 8층 전망대를 제외한 나머지 층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와 오사카성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먼저 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오사카 시내 전경을 관광하고 한 층씩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전시물들을 둘러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외부와는 다른 현대식 시설들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여기서 또한 일본사람들의 상업적이면서 관광자원을 여러모로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를 알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성과는 많이 다른 일본의 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오사카의 우메다(梅田) 공중정원의 칠석날 장식

 

 

오사카 성 공원에서는 과거 우리가 중,고교 시절에 착용하고 생활했던 교복을 일본 중학생이 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학생의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최대범 선생님이 그 중학생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사카 성을 뒤로하고 쓰루하시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니혼바시(日本橋)역에서 내렸다. 역을 조금 벗어나니 쇼핑가로서 유행의 첨단을 걷는 상점과 전통 양식의 오래된 가게가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쇼핑가인 만큼 이곳을 즐겨 찾는 이는 주로 일본의 젊은이들이었고 따라서 그들 취향에 맞는 상점들이 들어서게 마련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용산전자상가처럼, 전자제품상가가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니혼바시의 이곳저곳을 김건일, 윤좌한 선생님과 함께 구경도 하고 상품을 골라서 사기도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바의 다카지마야 백화점에서는 선물용 양산을 4개를 샀다. 다카지 고 미술품 전시장 앞에서 오후 5시 30분에 일행이 만나서 4명씩 택시를 타고 로얄 호텔로 돌아왔는데, 김한승 가족과 함께 타고 온 택시요금 1280엔은 분담해서 냈다.

일행 중 8명의 남자 선생님들만 교장 선생님의 안내로 걸어서 재일 교포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갔다. 그곳에서는 갈비와 김치로 저녁 식사를 푸짐하게 즐기고 돌아올 때도 상당히 먼 길을 걸었다. 무더운 여름철의 오사카의 밤은 몹시도 끈끈하고 기분이 상쾌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텔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훨씬 상쾌했다. 8931호실에 우리일행 전원이 모여서 마지막 밤 파티 겸 토론회를 가졌다. 

 

                          오사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