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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고구려유적지 그리고 북경 여행(10)- 중국의 역사가 서려있는 자금성

달리는 말(이재남) 2008. 10. 28. 17:03

 

 북경의 자금성

 자금성의 건청궁 옥좌

 자금성의 건청궁 침실

 자금성 지붕들 

 자금성 내부

 자금성

자금성 정양문 일명 정문 

 자금성 내에 있는 벽화 

 자금성 내에 있는 벽화

 자금성 곳곳에 설치돼있는 방화용항아리

 자금성의 약도

              자금성의 오문 


 

                                                   중국의 역사가 서려있는 자금성


천안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자금성 입구가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이라는 자금성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기도 한다.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 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으로 중국에서는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과 같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궁전건축물이다. 만개의 방은 신만이 가질 수 있는 숫자라 하여 9999개의 방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자금(紫禁)이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말로, 북경의 내성(內城) 중앙에 위치한다.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가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립하여 1420년에 완성하였다. 그 후 명·청 시대를 통하여 궁전과 궁문을 여러 차례 보수·개축하였으며 명칭도 바뀌었다.

성벽주위 4곳에 각각 1개씩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오문(午門)이 정문으로서 특히 웅대하며, 동쪽을 동화문(東華門), 서쪽을 서화문(西華門), 북쪽은 신무문(神武門)이라 부르며 네 모퉁이에 각루(角樓)가 서 있다.

태화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 우측공간에서 경찰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켐코더에 담고 얼른 일행들과 합류했다. 차례로 김춘산씨의 설명을 들으며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등을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구경하고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즐겼다.

성내는 남쪽과 북쪽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으며, 남쪽은 공적인 장소의 바깥부분으로 오문에서부터 북쪽으로 태화문(太和門)·태화전(太和殿)·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이 한 줄로 늘어서 있으며 그 동서에 문화전(文華殿)·무영전(武英殿) 등의 전각(殿閣)이 배치되어 있다. 그 중 태화전은 남북 약 33m, 동서 60m의 당당한 건물로서 자금성의 정전(正殿)이며, 중요한 의식장으로 사용되었다.

바깥부분, 즉 외조(外朝)의 북쪽은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내정(內廷)으로서 보화전 북쪽에 있는 건청문(乾淸門)으로부터 건청궁(乾淸宮)·교태전(交泰殿)·곤녕궁(坤寧宮) 등이 한 줄로 늘어서 있으며, 그 좌경(左京)에 많은 건물이 있다. 

자금성 안은 2008년 8월 8일 08시 8분 8초에 개막하려는 베이징 올림픽을 위하여 대대적인 보수작업에 들어가 있다. 자금성만 그러는 게 아니라 북경은 여기 저기 보수하느라 온통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자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게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화재를 구경 할 때 사람들에 치일정도는 아니었으나 중국인들 틈바구니에서 문화재  하나하나를 보기에는 너무 어려움이 뒤따른다. 어떻게 보면 자국문화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함은 부러움으로 작용했지만 이에 대한 관리와 보존에는 너무나 소홀하기만한 이중적인 모습에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금성 안에는 이채롭게도 나무가 보이질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왕실의 신변보호 차원이란다. 궁내에 자객들이 침입하여 큰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한밤중에 내려와 왕실의 사람들을 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나무는 궁 안에 절대 심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궁궐 안에서도 낮은 관상수는 심었으나 큰 느티나무 같은 것은 심지 않았다는데 이것 역시 자객으로부터 왕실을 보호하기 위함 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의 자금성처럼 넓고 개방된 공간에 군사를 배치한다면 숨어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자객이 침입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금성 안의 건물 옆을 보면 항상 커다란 항아리가 비치되어있었는데, 화재 시에 쓰일 방화수를 담아놓는 항아리라고 하였다.

옛 시절에는 지금처럼 소방서가 없어서 스스로 진화작업을 해야 하고 또한 건물자체가 목조이기 때문에 항상 이처럼 방화수 준비를 해야 했고, 겨울에는 방화용 물이 얼기 때문에 항아리 밑에는 불을 뗄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자금성은 온통 금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항아리까지 금으로 도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외적이 침입하여 항아리는 무거워서 들고 갈 수 없으니까 도금을 벗기기 위해 항아리를 긁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긁은 항아리의 상처가 생생하다.

내정은 1925년 이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중국문화재의 전당이 되고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자금성 구경을 마무리할 즈음, 밖으로 나오면서 남북 약 1,000m, 동서 약 760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자금성이 1구획으로 성 둘레에 도랑을 파 연못을 만들어 놓았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