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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 포르투갈, 모로코를 다녀와서(24)-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지리적 배경과 역사

달리는 말(이재남) 2006. 8. 21. 13:47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대성당-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지리적 배경과 역사

 

우리는 지루한 버스여행 끝에 드디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하였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고려점」이라는 간판을 단 한인 음식점에 들어가 불고기 백반으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호텔에 들어가니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길고 긴 버스여행 때문에 몹시 지루하고 피곤하다. 그러나 여행기록은 빼먹을 수가 없었으므로 기록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마드리드는 시내 중심가에의 경우 좁은 거리가 구불구불하며 건물이 밀집되어 있다. 그 주변으로 넓은 직선형으로 된 확장지구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외곽지구에는 새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구시가의 경우 서쪽으로는 왕궁, 동쪽으로는 레티로 공원으로 이어져 화려한 볼거리와 휴식을 제공한다. 또한 구시가와 신시가를 잇는 카스테야나 거리를 주변으로 많은 오피스건물과 대형 은행,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있으며, 그란비아 거리에는 극장을 비롯한 오락시설들이 밀집해 있고, 푸에르타 델 솔의 남쪽으로는 쇼핑가와 번화가들이 주류로 이 도시를 이루고 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로 이베리아반도의 중앙부, 해발고도 635m의 메세타 고원에 위치하며, 만사나레스강(江)에 임한다. 유럽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강수량 419mm로 건조하단다. 스페인의 정치·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산업도시로서의 중요성도 크며, 도로·철도 및 항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인구상으로는 유럽 제4의 대도시다. 마드리드는 10세기경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무어인()이 세운 성채에서 비롯되는데, 이때는 마헤리트라 부르고, 이 성은 마드리드가 수도로 된 후에는 왕궁이 되었고, 동시에 이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1083년 카스티야왕 알폰소 6세가 이를 탈환하였으나 이때는 국왕의 임시숙소에 지나지 않았으나, 1492년 가톨릭 국왕부처에 의해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본거지였던 그라나다가 함락되었고, 같은 해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스페인은 황금세기라 불리는 전성기의 16세기를 맞게 된다.

1556년 왕으로 등극한 펠리페 2세는 당시 수도였던 톨레도가 지형적으로 요새화된 도시이긴 하지만 외적 팽창이 어려운 지역임을 판단, 대제국의 수도로는 적당하지 못함을 깨닫고 결국 1561년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게 된다.

이때부터 마드리드는 명실상부한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중요도를 더하게 되었으며, 그 후 마드리드는 빠른 성장을 하기 시작했고, 여러 성당과 수도원, 마요르 광장, 부엔 레티로 궁 등이 건설되었다.

17세기 초에 일시 궁전이 바야돌리드로 옮겨졌던 때를 제외하면, 마드리드는 그 후 일관해서 수도로서의 지위를 지켜왔으며, 구시가는 17∼18세기에 건설되었다. 1808년에는 프랑스군에 점령되어,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으로 유명한 5월 2일의 시민저항이 있었고, 다음날 프랑스군에 의한 보복이 있었다.

구시가의 중심은 라푸에르 타 델솔(태양의 문)이라 부르는 타원형 광장이며, 서쪽으로는 왕궁 및 부속 왕립 무기고와 통하고, 남서쪽으로는 17세기에 야외극장이었던 마요르 광장이 있다. 그 앞쪽의 세바타 광장에서는 아침에 채소와 식료품 시장이 열린다.

태양의 문 북쪽을 동서로 활처럼 휘어 뻗은 호세안토니오가(街)와 동쪽으로 뻗은 알칼라가에는 은행 ·호텔 ·클럽과 고급상점들이 집결하여 중심 상점가를 이루고 있다. 태양의 문 동쪽은 거의 남북으로 프라도가(街)가 뻗고, 그 동쪽에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프라도 가는 다시 레코르테스 ·카스티야 ·헤네랄리시모 등 여러 거리로 이어져 관공서와 고급 주택지를 이루고 있고, 구시가를 둘러싼 신시가는 19세기 후반의 철도 개통을 전후해서 주택지 ·공장 등이 들어서고 교통시설이 갖춰진 지역이다.

마드리드는 정치도시로서 궁전이 있었을 뿐 산업은 미미하였으나, 1936∼1939년의 스페인내란 후 스페인 정부가 내전에 의한 파괴의 복구 과정에서, 주변 농촌으로부터 많은 건설노무자를 받아들인 것이 마드리드의 성격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정부의 지원으로 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전기기계 ·항공기·오토바이 등의 기계공업과 식품가공 ·제지 ·화학 등의 여러 근대공업이 발달하였고, 정보산업으로서 출판 ·인쇄업종도 바르셀로나로부터 이전해 왔다.

마드리드의 발전 속도는 인구증가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875년 35만, 1910년 60만, 1930년 95만, 1950년 163만으로 계속 증가하고, 1981년에는 319만 명으로 바르셀로나를 능가하였다. 예전에 시 주변이었던 동쪽의 유명한 레티로 공원과 북서쪽의 대학은 시에 포함되었고, 서쪽 교외에 있던 카사데감포 대공원도 지금은 시에 접한다.

교통기관으로는 지하철 ·노면전차 ·시내버스 ·트롤리버스 등이 있으며, 북역 ·남역 ·델리시아스역에서 국내 각지로 향하는 철도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남쪽 교외의 바라하스에 공항이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이 세계에서 자랑하는 미술관으로, 1819년 왕실의 수집품을  중심으로 개설되었다.

중세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에스파냐 ·플랑드르 ·이탈리아의 그림이 많으며, 특히 스페인 3대화가인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의 작품은 최고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반 데르 바이덴의 「십자가 하강」, 보시의 「일락의 낙원」, 티치아노의 「음악을 즐기는 비너스」, 엘 그레코의 「오순절(五旬節)」, 벨라스케스의 「브레다 성()의 항복」 「궁녀들」,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 「나체의 마하」 등 수없이 많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 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대성당-                                                     

 -마드리드의 왕궁-

                                          -스페인의 아름다운 건축물-

                                                         -스페인의 아름다운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