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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루이 14세의 아방궁, 베르사유궁전

달리는 말(이재남) 2021. 10. 16. 06:22

짐은 이제 죽는다. 그러나 국가는 영원하리라.”라는 말을 남기고 온갖 영화와 부를 누리다 떠난 루이14세의 아방궁이 바로 베르사유궁전이다. 루이 왕족들이 호사를 누린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궁전이다.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원래는 루이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다. 1662년 무렵 루이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의 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화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루이14세의 방으로 꾸몄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화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내부-

 

궁전의식을 치루거나 외국특사를 맞이할 때 사용되었으며,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행해지는 등 국제적 행사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이 거울의 방에서 화려한 내부 장식을 한전쟁의 방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루이 왕족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방으로부터 바라보이는 정원은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다. 프랑스혁명으로 가구, 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지기는 하였으나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부분은 오늘날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정원에는루이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분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내부와 정원-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의 분수와 정원-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모양의 대운하 들을 배치하였다. 전쟁의 방에는 색조 회반죽으로 된 타원모양의 커다란 부조가 있는데,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왕의 침실은 독재자 루이14세가 밤을 보냈던 곳이다.

왕비의 침실은 따로 있다. 남편을 따라 온갖 호사를 누린 후 처참하게 젊은 생애를 마감한 마리앙트와네트가 사용하던 침실이다. 베르사유궁전은 1979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베르사유의 한 가운데에는 접견용 홀들이 있다.

 

-루이14세의 아방궁 파리의 베르사유궁전 내부-

 

이 웅장한 규모가 2143개의 창문, 1252개의 벽난로, 67개의 층계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루이14세도 어느 왕들처럼 금을 좋아했나보다. 곳곳을 금으로 장식을 했다. 금을 좋아하는 왕의 집은 울타리도 금으로 장식했다. 또한 호수와 절지가 아주 잘 되어진 나무들로 이루어진 아주 넓은 정원이 있다.

이곳은 꼬마열차가 한 바퀴 도는데 30분 정도 소요되는 이 정원에는 무려 1400개의 분수가 있으며 1624년 루이13세를 위한 간소한 정원으로 시작된 샤토 드 베르사유는 계속된 증축공사를 거치면서 점점 커졌으며태양 왕루이14세 때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1661년부터 1669년까지 루이14세는 건축가 루이 르보를 시켜 길이가 670m에 이르는 거대한 정원을 만들었다. 1667년 앙드레 르노트르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통적인 정원을 설계하기 시작해 화단과 길을 장식적으로 배치한 커다란 파르테르 정원, 테라스, 심지어 운하까지 포함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