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 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김규진의 작품이란다. 천년 이상이 됐다는 소나무도 만나고, 사자루에 앉아 휴식시간을 갖기도 한다. 사자루를 지나 만난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에 도착하였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다. 정상 바위위에 육각지붕으로 세워진 정자로 백제멸망당시(서기660년)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부풍시사」라는 시모임에서 건립했다고 한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구조는 육각형 평면을 가진 육모지붕으로 꾸몄다. 마룻바닥 주변에는 간단한 난간을 설치하였고, 천장에는 여러 가지 연꽃무늬를 그려 놓았다.
부여 백마강
백마강은「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Km를 흐르는 금강을 일컫는데 백제 사람들은 이강을 사비강, 백강이라고 불렀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수분리 신무내산 뜬봉샘에서 시작하여 장항, 군산앞 서해바다까지 401Km를 흐르는 큰 강이다. 금강을 지역에 따라 고유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금산군 제원 부근에서는 광석강, 대전시 회덕에서는 부강, 또는 절강, 공주에서는 곰강 또는 금강, 금강천이 합류되는 천정대 부근까지는 창강으로 불리며, 백마강 이하 서해바다까지는 진포라고 불렀다. 원래 금강은 곰강(웅진)의 음역으로 공주부근에서 한정하여 불렀으나 점점 확대되어 지금의 금강 전체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호인 낙화암은 백제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되고 백제700년의 왕조가 무너지던 날 의자왕궁녀들은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있는 바위 절벽에서‘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러운 삶은 사느니 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리라’하며 몸을 던졌던 곳이다. 여인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백제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여인들의 원혼이 깃든 곳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내려가 볼 수는 없었으나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하고 있는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진 절로 백제시대에는 이곳에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 건립된 듯하다.
-부여팔경의 일부 낙화암-
고란사란 절 이름은 뒤쪽 바위에서 자라는 고란초에서 유래하였는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고란초의 전설이 유명하며 백마강을 바라보는 주위 경관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백제시대 임금님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즐겨 마셔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 고란약수임을 알 수 있도록 고란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인 고란초의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어 오게 하였다. 고란약수를 즐겨 마신 백제임금은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렸다 하며, 고란약수를 한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백화암 쪽으로 올라갈 때의 길과 엇갈려 또 다른 길로 내려오면서 한참동안 길을 헤매게 되었다. 늦게 도착한 주차장의 화장실에 다녀와 처제가 준비해온 사탕, 초콜릿과 껌 등을 받아먹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지쳤으나 승용차를 타고 또 다른 곳, 연꽃으로 가득한 궁남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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