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의 여행

(6)- 카트만두의 문화유산

달리는 말(이재남) 2015. 11. 9. 06:12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의 고대왕국의 유적지  

 

 

 

카트만두는 지금


카트만두는 바그마티 강과 비슈누마티 강의 합류점 근처, 해발고도 1,324m 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723년 라자 구나카마데바가 세웠으며, 초기에는 만주파탄이라고 불렸다. 오늘날의 이름은 1596년에 라자 라치미나 싱이 1그루의 나무로 지었다는 목조사원에서 유래한다. 카트는 나무, 만디르는 사원 또는 건축물이라는 뜻이다.
이 사원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지금도 시내 한복판의 광장에 있으며, 승려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카트만두는 1768년 이후 구르카족의 왕실 주재지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현지에서는 '카트만다우 (Kathmandu)'에 가까운 발음으로서 흔히 '카트만즈'라 부르는데 예전에는 '칸티풀 (Kantipur)'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하는 네와르족의 노력으로 네팔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및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는 수백 년 동안 오솔길밖에 뚫려 있지 않았던 네팔에서 이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고 공항확장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전국교통망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시민들은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네와르족은 주로 시내에 거주한다. 1959년에 인가받은 트리부반대학교가 있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역대왕조가 자리 잡았던 만큼, 네팔의 경제, 정치, 교통, 문화의 중심지로서 티베트-인도 무역로의 교통거점으로 성장한 도시이다. 트리부반이라는 국제공항이 있어 인도, 방글라데시로 통하는 항공로가 열려있다.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2개의 주요거리는 문과 창문에 무늬를 새겨 장식한 벽돌집들과 좁은 도로로 이루어진 옛 시가지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1934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옛 시가지가 파괴된 후 현대적인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말라족 왕들이 살던 궁전이다. 라자 마힌드라 말라가 지은 이 궁전에는 탈레주 사원이 있으며, 궁전정문에는 하누만 신의 동상이, 옆에 있는 작은 광장에는 탑 모양의 사원들이 세워져 있다.

동쪽에는 열병장인 툰디켈이 있고 그 한복판에 돌로 만든 단이 1그루의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데, 옛날에는 정부의 주요시책이 이 단 위에서 군인들에게 처음 발표되었다. 열병장과 시가지 사이에는 전직총리인 빔 센 타파가 지은 높다란 망루가 있다. 카트만두교외에 있는 라나 가문의 많은 궁전들 중에서는 한 때 세습총리의 관저였고 지금은 정부청사로 쓰이고 있는 싱가 궁전이 손꼽힌다. 북동쪽으로는 5㎞가량 떨어진 곳에는 티베트불교도들의 성전인 흰색의 웅장한 보드나트 사원이 있다.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축제로는 봄에 마첸드라 신의 조상을 들고 행진하는 마첸드라자트와 시바라트리, 늦여름의 가이자트라(소의 축제),초가을에 데비 여신을 상징하는 젊은 여성을 받들고 행진하는 인드라자트라가 있다.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산맥이 위치해 있는 만큼, 히말라야트래킹이 전 세계 산악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또한 이곳의 토산품 역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도시의 혼잡함을 벗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이다.

 

 

카트만두의 문화유산

 

 

카트만두계곡은 풍요로운 평지의 밀집지역으로 이루어져있다. 해발고도 1200~1500m 사이이며, 이 계곡은 570㎢의 작은 면적이지만 그 크기는 작아도 여기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7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네팔의 가이드 크리시나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광장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파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 정도다.

그런데 인도인 가이드 라훌라가 우리와 함께하였으나, 이 나라 네팔은 현지인 가이드가 없으면 단체관광객의 입장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16세기에 지어진 말라왕조의 궁전과 사원이 있는 「더르바르광장(Durbar square)」의 인파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걸어서 이동했다.

이 광장은 카트만두왕국의 중심부로서, 네팔의 옛 왕궁인 하누만 도카 앞에 있는 광장으로서 더르바르는 왕궁이라는 뜻이다. 12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어 18세기의 샤(Shah)왕조, 19세기의 라마교의 통치자들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란 네팔의 옛 왕궁, 하누만 도는 왕궁이라는 뜻이다. 12세기와 18세기 사이에 건립되었다.

왕궁이름은 힌두교신 가운데 원숭이 수호신인 하누만에서 전래되었다. 19세기까지도 네팔왕족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과거로부터 대관식과 같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거행하여 왔으나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왕들의 자료와 사진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왕궁의 입구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우산으로 머리를 받치고 서있는 모습의 하누만상이 있으며 이 왕궁에서 가장 높은 곳은 9층의 바산타푸르(Basantapur)탑이다. 이 왕궁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로 만든 창틀로 치장되어 있고 트리부완왕이 네팔을 외국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트리부완왕 기념박물관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마헨드라에게 헌납한 마헨드라박물관도 있다.

그런데 하누만은 원숭이의 수호신인 풍신(風神)의 아들이며, 원숭이의 왕 스그리바의 가장 현명한 신하다. 문무를 겸한 초 자연력을 지녔음은 물론 자유자재로 변신하여 하늘을 날 수가 있다. 라마왕의 비 시타의 탈환작전에 그의 긴 꼬리를 이용한 위력을 발휘하여 헌신적인 공을 세우게 된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촌락의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농사에 관계를 맺고 있고 문학작품에 자주 인용된다.
카트만두 계곡에 있는 3개의 왕궁광장 중 하나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하누만도카 등 여러 왕국건물과 역사 깊은 사원으로서 아름다운 내원(內院)과 우아한 탑 등이 들어차 있다. 광장의 남쪽 끝에 처녀신인 쿠마리의 화신(化神)이 살고 있는 쿠마리사원이 있으며 500년 전에 우물 공사를 하던 중에 발견된 칼리버이라브상 등이 있다.

우리는 이 사원에 들어가 라훌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사원을 구경하려는 마당에 꽉 들어 찬 외국인 관광객들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더르바르라는 말 자체는 왕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달발광장」의 의미는 「구왕궁터」라는 뜻이 된다. 한 때 네팔의 왕 가운데 한 왕이 3명의 아들에게 왕궁을 똑같이 나누어준 일이 있었는데, 가까이 붙어있는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에 각각 3개의 왕궁이 들어서게 되었다.

더르바르광장은 카트만두왕국의 중심부다. 3개의 왕국시대에 3개의 광장은 왕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놓았다. 이 3개의 도시는 경쟁하면서 건물을 지으려다가 또 다른 왕조의 침략에 의해 하나씩 망해갔다. 이런 과정으로 카트만두 지역에는 3개의 「달발광장」이 남아있게 되었다.

카트만두의 달발광장은 타멜이라고 부르는 시장으로부터 20분을 걸으니 나오는데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관광할 수 있다. 네팔의 건축물들은 웬일인지 중국의 것들과 많이 닮아있다. 이는 8세기 이후에 고대 중국으로 끌려간 네팔의 기술자들에 의해 중국건축에 많은 영향을 줬으며 네팔의 사찰은 깜짝 놀랄 만큼 웅장하고 규모가 크다.

이 광장은 옛 왕궁이 많이 남아있었으며 힌두문화를 들어다볼 수 있는 사원들이다. 파괴의 신인 시바와 부인이 16000명이나 됐다는 크리슈나, 용맹을 상징한다는 두르가, 지혜의 신인 가르샤, 얼굴이 코끼리인 시피락슈미 등 사원마다 다양한 힌두신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어둠이 밀려오기 직전에 광장에 들어갔지만, 그 너른 광장을 구경하다보니 본격적인 어둠속에서 구경할 수밖에 없다. 조명시설이 좋지 않아 어두운 곳에서 더 이상 구경하기가 어려워서 Soaltel hotel로 돌아왔다. 어제 밤에는 거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피곤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다.

7시에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했다. 이 레스토랑에는 먹을 것들이 너무 많다. 배불리 갖다가 먹고,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왔다. 피곤하고 졸리기는 하였으나 꼭 해야 할 샤워를 하고 여행일기를 쓰고 나니 9시경이다. 내일의 여정을 위해 깊은 잠을 자두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