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21)-무자비하고 잔인했던 정복자, 칭기즈칸 

달리는 말(이재남) 2015. 9. 14. 06:10

                                                                                             

 

 

 

 

 

 

 

 

 

                                                                                                사진설명
                                                     1-흡수골공원의 아름다운 겔 켐프의 입구
                                                     2-흡수골공원의 아름다운 모습
                                                     3~5-햐사산(해발 2700m)정상을 오르는 중의 야생화의 군락지
                                                     6~8-햐사산(해발 2700m)정상의 몽골인들의 샤머니즘을 나타내는 어워

 



                                      무자비하고 잔인했던 정복자, 칭기즈칸

 



그는 1227년 8월 18일에 죽었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정복자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칭기즈칸은 몽골에서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받는다. 그는 몽골제국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몇 세기 동안 유라시아 대륙의 넓은 영토를 통치했던 몽골제국은 몽골제국에 의한 평화시대를 이루고, 인구학과 지정학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켰다.
몽골제국의 영토는 현대의 몽골,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이라크,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쿠웨이트, 터키, 폴란드, 키프로스를 포함하는 것이다. 당시 고려는 간접지배를 받았는데, 이는 고려의 저항이 끈질긴데다 산악지대가 많은 고려정벌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몽골군은 베트남정벌에 실패했는데, 이는 밀림지대인 베트남에서 몽골군의 주력인 기병이 힘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호라즘정벌을 떠나기 전 칭기즈칸은 서하에 참전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이는 이후 몽골이 서하를 재침략하여 멸망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호라즘정벌은 몽골군이 중앙아시아를 넘어 아랍지방, 러시아, 동유럽까지 침략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라즘정벌 전 때 호라즘을 몰아내기 위해 몽골군을 이용하려던 아바스왕조는 이후 그 몽골군에 의해 멸망했고 바그다드의 칼리프 역시 살해당했으며 이집트의 맘루크왕조를 제외한 모든 이슬람권이 몽골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무함마드 샤가 몽골의 대 상단을 살해한 것에 대해 많은 이슬람역사가들은 이슬람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직접적인 요인으로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무함마드 샤는 뛰어난 통치술로 단기간에 넓은 땅을 차지했으나 어리석게도 아바스왕조의 칼리프에게 자신에게 칼리프 자리를 넘길 것을 요구해 타 이슬람세계의 반감을 샀다.
안정되지 않은 국내사정을 무시하고 몽골을 도발하여 화를 자초하는 무모한 모습을 보여 후세에 어리석은 군주로 평가되고 있다. 칭기즈칸은 주변국을 확장해나가면서 자신에게 협력할 경우 자치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했다. 그러나 반항하게 되면 그 지역전체를 풀 한포기 남김없이 모조리 멸족시켰다.
전멸시킨 사람들의 해골을 모아서 탑을 쌓았다. 바그다드와 이스파한 등의 지역에서 전멸시킨 사람들의 해골을 거의 100,000 개가량을 모아 탑을 쌓기도 했다. 특히 샤리 골골라의 경우 정복활동 도중 칭기즈칸의 손자인 모토칸(또는 무투겐)이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므로 칭기즈칸의 분노를 사서 풀 한포기 남김없이 모두 죽일 뿐만 아니라 모든 건물을 파괴시켜 전대미문의 폐허로 만들면서 멸망시켰다.
칭기즈칸 그가 활발한 정복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능력위주의 군 인사행정을 펼쳤으며, 이민족이라 해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인재를 흡수했고, 승마능력과 기동성이 뛰어난 군대를 유지했고, 상인들을 통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했으며, 그리스도교나 이슬람 등 다른 종교를 존중해줬으며 정복하고자 하는 나라가 다종교사회인 경우, 특정종교를 지지하여 내분을 조성하는 등 이간책을 사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