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상해,항주

황산,상해,항주의 여행(19)-상해의 상징이자 현대 역사, 「외탄」

달리는 말(이재남) 2014. 10. 1. 05:43

 

상해의 동방명주

상해의 이모저모 

상해의 이모저모 

상해의 황포강에서 바라본 동방명주빌딩

중국상해의 당조호텔 로비 

중국상해의 모습   

 중국상해의 남경로

 

 

 상해의 상징이자 현대 역사, 「외탄」

 

그곳에서 나온 일행은 저녁식사를 하려고 황포강에서 멀지 않은 중심가의 음식점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마쳤다. 황포강 유람선을 타려고 「외탄」을 지나가면서 차창 밖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차창 밖으로는 중국 제1의 직할시답게 즐비한 현대식빌딩과 고층건물마다 휘황찬란한 네온의 불빛과 오가는 자동차의 불빛으로 흘러넘친다.

그런데 상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원나라 때인 1292년으로 소주의 화정현을 분할하여 상해현을 두게 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상해는 19세기까지 남쪽의 광주나 복건성의 여러 해안도시에 비해 보잘것없는 자그만 항구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해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은 1842년 영국이 일으킨 아편전쟁이었다.

영국이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대량으로 유입시켜 국민경제와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자 중국은 이에 맞섰고, 영국의 공격으로 무력한 중국이 패배한 전쟁이었다. 아편전쟁의 첫 번째 희생물은 영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된 상해였다. 이때부터 황포강 연안에 외국인 거주지가 설치되었고, 서양의 문물이 범람하면서 상해는 서구화라는 변신과 함께 열강의 중국침략을 위한 거점으로 변했다.

이러한 상해의 굴욕은 황포강의 중산동로를 따라 즐비하게 남아있는 서양식건물에서 강하게 묻어나온다. 이 서양식건물의 상징,「외탄」은 상해의 상징이자 상해 현대 역사의 축도이다. 전체 길이가 약 1.7㎞이며, 다양한 국가의 건축양식이 모여 있어서「세계 건축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다.
한쪽으로는 넓은 제방을 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황포강의 경관을 즐기기 위해 항상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상해의 젖줄, 상해의 한강이라 불리는 황포강의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상해의 낭만을 즐기는 코스였다.
밤의 황포강 주변은 화려한 조명이 전체제방을 비추어 유럽도시에 와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하고, 근처에 위치한 동방명주 탑의 불빛이 외탄을 더욱 밝게 한다. 상해의 많은 연인들은 이곳에서 야간데이트를 즐긴다. 외탄 중간부분에는 큰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중국공산혁명의 원로인 진의(陳毅:천이)를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