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 토산품점의 보석들-

-브라질의 카니발, 삼바춤-
-브라질의 카니발, 삼바춤-
-브라질의 카니발, 삼바춤-
-브라질의 카니발, 삼바춤-
-브라질의 카니발, 삼바춤-
삼바의 역사적인 배경과 발전사
브라질하면 축구가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떠오르는 것이 삼바이다. 삼바(samba)는 남미 브라질의 민속무용이며 또 메시시(Masixe)라고 하는 순수한 라틴 아메리칸 댄스이다. 삼바의 유래는 브라질의 목화밭에서 목화재배에 경작을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노동인력으로 수입된 노예들이 노동에 혹사를 당하면서 겪는 고통을 잊으려고 그들의 원시적인 특유한 노래 가락에 맞추어 율동하였든 몸의 움직임에서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삼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아프리카의 기원인 흑인들의 특유한 되틂, 전후의 힙의 움직임(Hip Movement)을 가미한 피겨와 내추럴 롤(Roll)이나 거꾸로 돌고 그리고 주름잡는 등의 매끈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포르투갈의 서로 다른 두 댄스가 발전되고 독특한 댄스가 섞이어 발전하였다.
그것은 최초의 이민자로서 계속하여 브라질에 이주한 유럽 포르투갈의 춤이 후자인 것이고, 그 옛날 노예로서 수입된 아프리카 흑인들의 거친 되틂이 전자인 것이다. 4일간에 걸친「삼바 축제일」 로 제정된 국?공일에 모든 브라질사람들이 이 「삼바 대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브라질의 옛 수도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가장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는 「리우 카니발」은 전 세계에서 이 「삼바 대축제」를 보고자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이 「삼바 대축제」에 참가하고 또한 이를 배워서 돌아갈 정도로 유명한 댄스가 바로 브라질의 유일한 민속무용인 삼바 춤이다.
이 삼바는 1910년에서부터 약10년 간 미국에서 사교댄스로 인기가 있었으며, 이때 미국에서는 이 삼바를 「탱고브라질리언」이라 불렀다. 1917년에 비로소 사교댄스로 인정받게 된 이 삼바는 한편으로는 「카리오카 삼바」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는 브라질의 축제일에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를 가로 질러서 흐르는 조그마한 강인 카리오카를 건너 들어온 흑인들에 의해 소개된 삼바의 원형이 아닐까 싶다.
삼바음악의 대부분은 이 리우시의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으며, 제일 처음으로 소개된 삼바음악의 대표작은 돈가(Donga)의 작곡인 펠로텔레폰(Peroteretone)이고 삼바어의 모태는 흑인여자인 잠바(zamba)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삼바는 20세기 초에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였으나 일단 잊혀졌다가 근래에 다시 유행하고 있다. 이것은 지구촌 사회화의 영향에 따른 해외관광 여행의 붐에 편승, 브라질의「삼바 축제」에 많은 세계인의 참가가 그 원인이 아닐까 한다.
물론, 1923년에 개최되었든 국제무도강사들의 모임에서 이 삼바의 사교적 인기를 인정한 후 1960년에서 1970년까지 이의 학술적 이론정립을 위하여 노력한 영국의 무도연구가인 월터 레이드(Walter Laied)씨와 ISTD 개정기술 제정과 활발한 국제무도경기대회를 통한 보급사회에 힘입은 바 큼은 부인할 수 없다.
「삼바 대축제」를 개최하는 삼바카니발 대회장 삼보드로모
삼바도 역시 무도강사자격시험규정에 적응하여 그 자격시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무도강사자격시험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마라까낭 축구장을 조금 벗어나니 삼보드로모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내려 기념촬영을 하면서 설명을 들었다. 인종과 도시, 문화와 자연이 다양한 나라 브라질은 남반구에 위치해 2월이면 뜨거운 여름이 끝나가지만 「삼바 대축제」의 열기로 온 나라가 다시 한 번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다.
심장이 터질 듯한 강렬한 비트의 음악, 화려한 무희의 댄스, 그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매년 삼바 축제로 열기를 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2월, 수백 발의 폭죽이 터지면서 명문 삼바 학교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현란한 무대 차가 등장하고, 2박자의 강렬한 삼바 리듬에 맞춰 노래하고 탄력 있게 춤을 춘다. 무대 차 위에 높게 올라 선 무희들은 깃털과 구슬 장식으로 살짝 가린 채 늘씬한 몸매를 한껏 뽐내고, 도취된 듯한 얼굴 위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카니발은 엄선된 미녀들만의 축제는 아니다. 어린아이부터 허리 굵고 배 나온 중년, 숨을 헉헉대는 노인들까지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진 축제다. 목청껏 삼바를 따라 부르고 흥에 겨워 엉덩이를 흔들면서 관중의 흥분도 고조되어 간다. 행렬의 맨 끝은 가수와 악단이 장식한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것 같은 타악기의 울림과 관중의 환호성 속에 손과 깃발을 흔드는 것으로 팀의 퍼레이드는 막을 내리지만, 단 한번 참석하는 것만으로 평생 잊지 못한 강렬한 기억을 남기게 된다.
삼바 카니발은 매년 부활절 40일간인 사순절 직전 4일에 걸쳐 브라질 전역에 열리는데 올해는 2월25일부터 28일까지 펼쳐졌다. 이 기간에 전 도시가 카니발에만 몰두하고 8만 명까지 수용하는 경기장 삼보드로모에는 기간 내내 발 디딜 틈이 없다. 카니발에는 예선을 거친 18팀이 출연하는데 한 팀이 무려 4천 명이 되는 경우도 있다.
1시간20분 동안 노래하고 춤추며 1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보여준다. 음악가, 디자이너, 연예인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의상과 음악, 창의성, 공연의 의미 등을 평가해 점수와 순위를 매긴다. 축제를 보러 오는 사람이 1년 브라질 여행객의 3분의 1이라니 그 규모와 열기를 짐작 할 만 하다. 리우카니발은 원래 가톨릭 전통의 하나로 1854년에 시작되었다.
단순한 퍼레이드에 불과했던 카니발에 혼혈인들의 춤과 음악인 삼바가 결합되기 시작했고 삼바학교의 경연이 공식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삼바 카니발은 이들에게 삶의 중심이자 활력소이다. 2월의 남미는 여행하기에도 좋은 날씨지만 이러한 볼거리가 있어서 더욱 풍요롭다. 평소 가기 힘든 지역인 만큼, 게다가 한 번 놓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만큼 2월의 남미 여행의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2003년을 기준으로 하는 우리나라 교민의 숫자는 4만 9424명, 체류자수는 826명이란다. 브라질 이민 역사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6?25전쟁 후에 50명의 반공포로가 인도를 거쳐 브라질에 이주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브라질 이민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였다.
즉 1963년 2월 17세대 92명이 제1차 이민단으로 산투스에 도착, 상파울루 근교 농장에 정착하였고, 1964년에는 제2차 이민단 68세대 350명이 브라질로 건너갔다. 그러나 이들은 농지와 환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으므로 대부분은 상파울루 등 대도시에 모여서 상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브라질 정부는 한국의 농업이민 접수를 중단하고 기술계 이민만을 접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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