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부 여행

29.호놀룰루 공항에서 생긴 일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8. 08:36

호놀룰루 공항에서 생긴 일  

 

하와이의 해수욕장

 

하와이의 해수욕장 

하와이의 해수욕장 

                                                                                                                                         
그런데 그곳의 점원은 뜻밖에도 우리말로 말하면서 자기는 한국교포의 한 사람이라고 반가워했다. 할아버지께서 Hawaii에 이민을 왔고 그래서 본인은 이민3세란다. 그녀는 호놀룰루공항에서 일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동포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서 너무너무 좋다고 했다.
그녀는 그 선물을 포장하면서 모자라는 3달러는 내지 않아도 좋으니 사고싶은 그 물건을 가지고 가라고 반가운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누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을 했지? 너무나 흐뭇하고 고마운 마음이 너무 커서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곳을 나왔던 일이 두고두고 내 마음에 남아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우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판단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행은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사회와 문화를 보는 눈이 유연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어느 문화권에서는 지극히 정상인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와이 마우이의 이아오계곡


이런 문화충돌의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 그것이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정리하고 계획할 시간이 생긴다.
세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누구라도 한 번쯤 이런 꿈을 가져보았음 즉 하다. 어른이 되고 보니 외국여행은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여행이라는 것은 돈, 시간, 체력, 호기심의 4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학생 때는 돈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고, 두 가지가 다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돈과 시간은 있다지만 그때에는 여행할 힘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조건을 기다리다가는 좋은 세월 다 보내고 늙어서 후회하기 십상이다.  어느 때라도 적은 돈만 있으면 시간을 내서 여행이라는 또 하나의 인생을 즐겨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인간의 최대 과제가 행복을 찾는 일이라면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도 안에서 최대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닐까?
 

하와이의 민속촌

호놀룰루공항 12시 30분 발 KAL 054편을 이용하여 약 9시간의 비행을 하는 동안 기내에서는 그 날 점심과 저녁식사를 하게되었다. 이젠 비행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새삼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날 반갑게 맞아줄 식구들과 내가 아끼는 친구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내가 아끼는 사람들, 그들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눈물나도록 고마운 일이다.
교통지옥, 물가지옥, 공기오염지옥, 내가 사는 서울은 이렇게 지옥으로 표현되곤 하지만 내게는 천국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런데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보니 1997년 7월 30일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 아닌가?  짐을 찾고 입국수속을 하는 동안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며 우리부부와 강성균 선생님부부가 전철을 이용하여 집 가까운 곳에 도착해보니 밤 9시가 다 되었구나. 각자 집으로 향하면서 아쉬움을 간직한 가운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와이의 민속촌


언제 우리가 또 이렇게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인가? 대문 안에 들어서니 기다리고 있든 아들 민석이와 딸 수국 이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였다. 여행가방을 풀고 나니 갑작스럽게 피로가 몸 전체를 엄습한다. 준비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한 다음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시차와 장시간의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997년 8월 5일 이재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