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동부,캐나다여행

세계 3대폭포 가운데 하나인 미국과 캐나다의 나이아가라폭포-나이아가라의 염소섬의 유래

달리는 말(이재남) 2007. 2. 2. 11:36

 

 -나이아가라폭포-  

 

 

나이아가라의 염소섬의 유래

 

염소섬(Coatiland)은 5대호의 이리(Erie)호수에서 두 갈래의 강으로 갈라지면서 만들어진 섬이다. 염소 섬은 옛날 한 인디언 추장이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감도 찾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병든 사냥개와 함께 돌아오겠다던 시기보다 훨씬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섬에서는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추장이 죽은 줄만 알았다. 그래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모두들 떠난 후 추장이 이곳에 도착하게 됐다. 그 추장의 부족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모두들 떠나버려 텅 빈 섬에는 염소들만 남아 추장을 반겼다고 한다.

이후 추장 혼자 이 섬에서 염소들과 함께 살면서, 이 섬 이름을 염소 섬으로 불렀다한다. 염소 섬의 뷰포인트로는 미국폭포와 말발굽폭포로 나뉘어져있다.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와 미국의 나이아가라폭포가 세계 제 3대폭에 든다.

세계3대 폭포 가운데 하나인 나이아가라폭포는 5대호 가운데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로 통하는 나이아가라 강에 있다. 폭포는 하중도인 고트 섬(미국령) 때문에 크게 두 줄기로 갈린다. 고트 섬과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와의 사이에 있는 폭포는 호스슈(말발굽)폭포, 또는 캐나다 폭포라고도 하며 높이 48m, 넓이 900m에 이르는 것으로, 중앙을 국경선이 통과하고 있다.

 

나이아가라의 염소섬

 

고트 섬 북동쪽의 미국 폭포는 높이 51m, 넓이 320m에 이른다. 나이아가라 강물의 94%는 호스슈(말발굽) 폭포로 흘러내린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나이아가라케스타에 걸려있으며, 예로부터 인디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백인에게 발견된 것은 1678년 프랑스의 선교사 헤네핑에 의해서였다.

신대륙의 대자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선전되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때 세계 제1의 폭포라고 하였으나, 그 후 이과수폭포와 빅토리아폭포가 세상에 알려져 현재는 북아메리카의 제1의 폭포로 일컬어지고 있다. 폭포가 걸려있는 케스타 벼랑은 상부가 굳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있고 하부는 비교적 연한 이판암과 사암으로 구성되어있다.

폭포의 물이 떨어질 때 벼랑 하부의 연층을 후벼내듯이 침식하기 때문에, 돌출한 듯 남아있는 상부의 석회층도 허물어져 떨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벼랑은 해마다 0.7?1.1m 정도 후퇴하고 있었는데, 이후 거대한 발전소를 건설하여 수량을 조절하자 벼랑의 붕괴가 약화되어, 결과적으로 폭포의 수명이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이아가라폭포 주변의 캐나다의 거리

나이아가라폭포의 유람선

 

폭포의 주변은 경치가 아름다워 공원화되어 있으며, 교통과 관광시설이 정비되어있어 세계 각국으로부터 관광객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양쪽에는 나이아가라폴스라고 하는 같은 이름의 2개 도시가 마주 대하고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유역의 면적은 67만 3000㎢, 길이는 56㎞이다.

5대호 가운데 하나인 이리 호에서 북쪽으로 흘러나가 온타리오 호로 들어가며, 슈피리어 호, 미시간호, 휴런 호 등 위쪽의 호수에서도 흘러나간다. 나이아가라 강줄기의 가운데쯤에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이룬다. 강은 미국과 캐나다 국경의 일부를 이루며 뉴욕 주와 온타리오 주를 나눈다.

 

나이아가라폭포

 

1만 년 전 홍적세 후반에 처음 생겨난 강으로, 상류에서는 평균유량이 매초 5552톤에 달하며, 그 중 강줄기의 가운데쯤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1950년에 서명한 조약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관광시즌에는 수량을 매초 4890톤으로, 그 외의 기간에는 그 반으로 제한함으로써, 평균 매초 3679톤으로 넘쳐흐르는 물을 수력발전에 이용하고 있다.

수력발전은 협곡의 양쪽에 설치된 공공발전소 시설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부근의 알루미늄, 탄화규소, 흑연, 액체염소 등의 공장과 주변 도시에서 사용한다. 그리고 1885년에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주변이 나이아가라 보존주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식민지시대와 미국 독립혁명 당시의 여러 전쟁이 벌어진 나이아가라요새를 재건한 주립공원도 있다.

국경다리를 통해 건너간 캐나다 나이아가라 강을 가로지르면서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를 일부러 천천히 통과하면서 또 다른 각도로 폭포를 바라볼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캐나다국경 검문소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받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곧 캐나다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캐나다 나이아가라 강가 주변, 또 나이아가라 파크 웨이 바로 옆에 있는 Reif Estate Winery

 

「스카이론타워」에서 밤에 바라본 나이아가라 폭포는 환상적이다. 우리일행은 한인이 운영하는「정원」이라는 큼직한 식당으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갈비구이를 맛있게 먹었다. 과연 여기가 캐나다 땅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식사 후에는 옵션관광으로「스카이론타워」가 있어 그곳 타워로 장소를 옮겼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캐나다의 높은 타워(160m)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장소, 그곳에서 야경을 보려고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갔다. 우리일행은 늦게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나이아가라 스카이론 타워

 

밤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21개의 조명이 들어와 천연색의 불빛으로 반짝거린다. 이렇게 변화하는 조명색이 환상적이어서 나이아가라에서 가장 환상적인 기분을 일행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라보면서 사진을 촬영하다보니 어려움이 뒤따랐다.

10시에는 폭포위에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가 있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었는데 황홀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불꽃놀이를 정점으로 그 타워에서 내려왔는데 그 늦은 시간에 꼭 들려서 호텔로 가야할 곳이 있단다.

 

나이아가라폭포의 야경

나이아가라폭포의 야경


1812년 오대호를 둘러싼 미국과 캐나다의 전쟁 포도주 농장에서 나온 버스는 나이아가라를 향하여 달렸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하여 달리는 가운데 1812년 오대호를 둘러싼 전쟁, 나이아가라 강의 한 격전지를 둘러보았다. 1812년 캐나다의 이삭 브록 장군은 전쟁의 결전이 나이아가라 전선에서 벌어지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나이아가라 지방으로 황급히 내려가 미국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그의 휘하 군대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해 10월 13일 04시, 미합중국 육군부대는 미명을 틈타 나이아가라 강에서 도강 작전을 개시하여 퀸스턴(Queenston)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먼동이 틀 때까지 500명 이상의 병력이 강을 건너 캐나다 연안에 도착하였다. 이삭 브록 장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공격하여 미국군대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러나 이삭 브록 장군은 이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적의 흉탄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다. 그

날 늦게 영국과 캐나다와 인디언 병력은 미군을 반격하여 퀸스턴 고지를 탈환했다. 이 혈전이 끝난 후 미국군대는 강을 건너 퇴각했고, 1000명이나 되는 미군이 포로로 잡혔다. 이 숫자는 이삭 브록 장군 휘하의 병력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이와 같이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졌던 양국의 전투는 모두 영국 측의 대승리로 끝났고, 쉽게 승리하리라고 믿었던 미국인들의 꿈은 좌절되었다.

미국은 2년 동안 계속 어퍼 캐나다와 로어 캐나다를 집요하게 공격하였으나, 조기에 승리를 거두겠다던 그들의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영국과 캐나다인들의 사기는 드높아졌고, 그들은 이제 미국의 병력이 제아무리 많다하더라도 그들을 막아낼 자신감이 생겼단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나이아가라 스카이론 타워


그 격전지에 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도착한 장소는 꽃시계가 있는 곳이었다. 2000년 여름 스위스 제네바의 영국공원에 있는 꽃시계를 방문하여 사진촬영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던 기억이 있다. 나이아가라 강가의 꽃시계가 있는 장소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고, 조금 더 옮겨가서는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 월풀에서 역시 구경하면서 기념사진을 찍

었다.

 

캐나다 나이아가라 강의 Floral Clock이라는 꽃시계

 

그 나이아가라 강 월풀의 물 소용돌이를 보고 월풀 세탁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월풀 그곳을 나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가 있는 곳에 버스를 세워놓고 버스 안에서 설명을 들으며 구경했다. 그런데 그 교회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만을 확보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이아가라폭포 관광의 완결편, 『Maid of the Mist』호 유람선 나이아가라폭포 관광의 완결편이라고 가이드가 강조했고, 1846년부터 시작됐다는 나이아가라 강의 유람선 『Maid of the Mist』, 그 유람선을 탑승하려고 승강장으로 옮겨갔다. 승강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유람선을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아가라의 월풀

 

 비닐로 된 비옷을 하나씩 지급받아 입고 유람선에 탑승하여 폭포의 상류로 향하여 눈앞에 그대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장관이 넋을 잃게 한다. 강을 따라 폭포가 쏟아지는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 웅장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가까운 곳에 다다르면 물이 쏟아지면서 내는 굉음이 관광객을 압도한다. 물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보라를 일으키고 소나기가 내리듯 물을 온 몸에 뒤집어썼다. 미국폭포와 말발굽폭포 두 곳을 다녀오는 데는 40여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아가라의 유람선

 

유람선에서 내려, 그 비닐 비옷을 벗어서 쓰레기통에 넣고 나면 오름길인데 바로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기념품을 팔고 있는 상점들이 있고 그 밖으로 나오면 약속된 장소에 다다르게 된다. 일행들이 모이는 동안 잠깐이기는 했지만 잔디밭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드의 설명대로 나이아가라 완결 편을 끝내고, 그때부터 버스는 토론토를 향하여 힘차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