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1호인 익산 미륵사지석탑
사적 제150호인 미륵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 인근 현재 익산토성과 쌍릉이 위치한 곳인 오금산에 홀어머니와 마를 캐며 살던 마동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후에 신라의 선화공주와 혼인을 하고 백제의 왕이 된다. 바로 백제 30대 왕인 무왕(AD. 600~641년)이다. 왕이 된 무왕은 왕비와 함께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연못에서 세 명의 미륵부처가 나타난 것이다. 미륵부처의 출현에 놀란 왕비는 무왕에게 세 명의 미륵부처를 위한 절을 지어달라고 청한다. 이 왕비의 청에 의해 만들어진 절이 전. 탑. 낭무를 갖춘 미륵사다.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과 공예 등 최고의 기술이 발휘되었으며 신라의 진평왕까지도 기술자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미륵사지에는 국보 제11호인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익산 미륵사지 당가지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미륵사지의 출토된 유물 구슬
보물 제1753인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 문화재 자료 제143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이 있다. 한편 국보 제11호인 익산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석탑이다.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의 양식을 나무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에 한국석탑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또한 우리는 이 석탑을 통해 당시 백제인의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다. 낮은 기단 위에 여러 개의 돌기둥을 세운 탑신을 쌓았으며 기둥은 밑이 넓고 위가 좁아 안정감이 있다. 1층에는 사방으로 출입구를 내었고 내부의 중앙에는 중심기둥이 탑신 전체를 받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미륵사지 상세지도
탑의 기둥, 벽면, 처마, 지붕 등의 전체적인 형식과 외형적인 모습은 목조건축물과 비슷하여 지붕은 평탄하고 끝에서는 곡선을 이루면서 살짝 위로 들려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미륵사지석탑은 원래는 사각형태의 9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현재는 6층까지 남아있는데, 1999년 해체 보수 정비가 결정되었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해체조사 및 보수정비를 추진하고 있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은 2009년1월14일 미륵사지석탑을 해체하여 조사하던 중 내부의 중심기둥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미륵사지의 출토된 유물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 장소
이 사리장엄에서 사리 내호와 외호, 사리봉안기 등 19종 4,900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원형 합에서는 금제(金製)고리, 진주, 곡옥 등 4,800여점의 유물이 추가로 발견되어 사리장엄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9,700여점에 이르고 있다. 가로 15.5cm, 세로 10.5cm인 금으로 만들어진 사리봉안기에는 백제의 왕비가 재물을 바쳐 이곳에 미륵사를 세우고 사리를 봉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미륵사지의 창건배경과 목적 등을 이해하고 백제 무왕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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