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와 함께한 말레이시아 여행

16.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달리는 말(이재남) 2020. 3. 20. 10:17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세 번째 카피탄 치나였던 얍 아 로이(Yap Ah Loy) 때에 와서, 조용한 광산마을이었던 쿠알라룸푸르는 셀랑고르주에서 가장 앞선 선진도시가 되었다. 초기에 쿠알라룸푸르는 셀랑고르내전의 중심에 있었는데, 이 내전 가운데 하나는 셀랑고르왕자들의 주석광산채굴이권을 둘러싼 다툼이었다.

 

쿠알라룸푸르 The Westin hotel 30 7호실에서 바라본 주변건물

쿠알라룸푸르 The Westin hotel 307호실에서 바라본 주변건물

 

또 다른 하나는 카피탄자리를 놓고 카피탄 얍과 그의 자리를 뺏으려던 총 총(Chong Chong)간의 반목에 따른 싸움이었다. 카피탄 얍과 그의 후원자였던 텅쿠 쿠딘(Tengku Kudin)이 승리하였고, 얍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쿠알라룸푸르는 셀랑고르의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는 내전의 피해를 입은 쿠알라룸푸르를 재건하였고, 셀랑고르 다른 지역의 중국인 채굴꾼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또한 지속적인 식량공급을 위해 말레이인농민들을 쿠알라룸푸르근교에 정착하도록 유도했다. 카피탄 얍의 성공으로, 쿠알라룸푸르는 1880년에 셀랑고르주의 주도가 되었다. 그는 쿠알라룸푸르 최초의 학교를 건설하였으며, 무주택자를 위한 보호소를 건설하였다. 얍 자신도 하이 산 비밀결사의 회원이기도 했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갱단간의 싸움도 자주 일어났다. 얍은 유곽, 카지노, 술집에 허가를 내 주었다. 얍의 사망 후 도시가 번영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셀랑고르 주지사였던 프랑크 스웨튼햄 경의 덕분이었다  

 

쿠알라룸푸르 The Westin hotel 307호실에서 바라본 주변경관

 

1896, 스웨튼햄의 감독 하에 말레이연방주가 만들어지면서, 쿠알라룸푸르는 수도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42111일에 일본군이 쿠알라룸푸르를 점령하여 44개월 동안 통치하였다. 1957년의 독립 후, 쿠알라룸푸르는 말라야연방의 수도였고, 1963년 국명이 말레이시아로 바뀐 후에도 그 지위를 유지했다.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마르데카경기장에서 말레이시아의 첫 국무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다타란 메르데카(독립 광장)의 게양대에서는 유니언잭이 내려지고 말레이시아의 국기가 게양되었다.

 

쿠알라룸푸르 The Westin hotel 4층의 수영장에서 바라본 호텔 주변의 빌딩

 

쿠알라룸푸르는 연 10%대의 1990년대 아시아경제성장 붐을 타고 크게 성장했다. 활기차게 성장하지 못했던 식민지도시, 쿠알라룸푸르에는 고층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차고, 힘차고, 진보한 도시로 거듭났다. 그러나 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은 이러한 발전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쿠알라룸푸르 The Westin hotel 307호실에서 바라본 주변건물

 

1990년대에 경전철, 2개의 고가고속도로를 포함한 도시전역의 6차선 고속도로 등을 건설하였음에도 교통체증은 계속되고 있다. 버스서비스는 악명이 높으며, 상수도수질 역시 문제가 있다. 발전계획 없이 커진 도심의 대부분의 도로는 비좁고, 복잡하며, 정체가 매우 심하다. 도심지역의 건축은 유럽식과 중국식이 혼합된 특이한 식민지양식으로 되어 있다. 다타란 메르데카에 이르는 도로는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유명한 길이다. 술탄 압둘 사맛 건물과 무어 양식의 구리 돔이 여기에 세워져 있으며, 다타란 메르데카 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 중의 하나가 세워져 있다  

쿠알라룸푸르 이슬람 Art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