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일주여행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16)-남방불교라고 일컫는 소승불교

달리는 말(이재남) 2016. 12. 1. 21:54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강가라마야 사원

 스리랑카 콜롬보의  켈라니야 불교사원

 

남방불교라고 일컫는 소승불교

 

불교의 핵심은 사성제(四聖諦)로 집약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네 가지 진리로,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부처의 법문에서 비롯된 사성제는 인생은 고()이며 고의 원인은 바로 욕망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만물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에만 고통의 악순환을 끊고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교는 업()이라는 개념 역시 강조한다. 카르마, 즉 업은 사람이 현생이나 전생에서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며, 악한 행동은 현세나 내()생에서 고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과거에 지은 행위의 결과로 받는 고통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생에서의 선행은 다음 생에서의 운명을 개선하게 된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팔정도(八正道)를 따라야 한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팔정도란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근(正勤), 정념(正念) 그리고 정정(正定)을 말한다.

()은 개선될 수 있으며, 도덕적 행위에 대한 불교의 기본적 가르침을 따르면 내생에서 더 나은 조건을 얻을 수 있다. 스리랑카사람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보존해온 역사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남방불교를소승(小乘)으로 폄하해온 한국불교계 일각에서도 남방불교의 이러한 전통에 주목하고 있다.

켈라니야 대학 철학과 다야 에디리싱혜(60)교수는한국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해 현재 100명 정도의 한국스님들이 스리랑카의 여러 불교대학과 사원으로 유학을 와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리랑카는 가난하지만 12세기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450년간 포르투갈, 영국 등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2,300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단절되지 않고 전해 내려온 불교전통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불교는 BC 500년 경 석가모니에 의해 생겨난 종교로서 불교신도들은 세상의 고통과 번뇌에서 해탈해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이 불교는 AD 100년경 대승불교가 생겨나면서 소승불교(小乘佛敎)와 대승불교(大乘佛敎)로 갈라졌다.

소승불교는 승려 중심의 종교로서 자기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어 성인(阿羅漢)이 되는 것이 목적이나 이에 비해 대승불교는 대중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대승불교의 목적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세계(極樂世界)로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불교이다.

석가모니께서 돌아가신 후 불교는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갈라졌는데, 상좌부는 승려들이 중심이 되는 전통적인 유파(流波)이었고, 대중부는 일반 신자들이 주도하는 혁신적인 유파였다. 대중부는 이후 스스로를 대승이라 칭하였다.

대승은 큰(Maha) 수레(Yana)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큰 수레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대승불교를Mahayana라고 표기한다. 대승불교라는 용어자체가 정착되면서, 이에 대비하여 전통적인 경향의 상좌부는 소승불교라 불리게 되었다. 대승불교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티베트 등에 전파되었다.

그래서 대승불교를 북방(北方)불교라고도 부르며, 소승불교는 스리랑카를 비롯해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등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남방(南方)불교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