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들의 모음

89.가을 밀어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2. 2. 21:36

                        가을 밀어


가을 밀어


가끔은 아주 가끔은
물빛 갈대 촉촉한 몹짓이
애뜯는 너의 마음이듯이
말끔이 마음을 비우고 몰래 너의 창가를
스쳐가는 바람이 되고 싶다
작고 여리던 하얀 구절초 처럼 야윈 모습에
아직도 저 꿈결 같은 동화 속에 살고 싶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새벽 빛에 스러져버리는 이슬이 되고 싶다
처음보다 더 순결한 너의 첫사랑이 되고 싶다
가을 하늘에 흘러가는 양떼구름처럼,
쓸쓸하게 흘러가는 가을 강물처럼
정갈하게, 지순하게, 소슬하게, 쓸쓸하게
그렇게 눈물나는 나였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은
가슴빈터를 공허하지 않게
목젖에 걸린 말 "사랑합니다"란 말을 꺼내
너의 가슴도 황홀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흔들리는 것이 자기 울음인지 줄 모르는 갈대처럼
아주 조용히 울고 싶다


지친 날개 숨겨 접어
재로 묻어둔 푸른 꿈들이
오래전 너와 나의 기도였듯이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부려 위안 삼고 싶다
아직은 우리들의 길이 남아 있음에

ㅡ 가향 박동월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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