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7.불암산 등산과 나의 행복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29. 16:46


불암산 등산과 나의 행복

 

나는 서산으로 해가 지기 얼마 전쯤에 등산복 차림으로 집 앞에 있는 불암산에 오른다. 며칠동안 산에 가지 않으면 허전하기도 하고 마음도 불안해진다. 때문에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거의 매일이다. 등산복이라 해보아야 대단할 게 없다. 헐렁한 티셔츠와 등산할 때 입는 가벼운 바지와 등산화 그리고 배낭이 전부이지만,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갑갑함으로부터의 자유, 자연과 함께 삶을 즐기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이 시간은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산이 좋아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면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던 세월이 15년은 족히 된다. 이젠 아예 불암산이 나의 정원같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과감하게 이사를 해왔다. 그리고는 아침, 저녁으로 불암산을 바라다보는 여유가 산을 좋아하는 나의 일과가 됐다.

남들이 산에서 서서히 내려올 시간, 나는 반대로 산으로 올라간다. 어떤 때는 홀로, 때로는 아내와 함께한다. 배낭에는 2ℓ짜리 페트병 3~5개를 넣고서다. 산행하는 등산시간은 약 2시간 정도. “걸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걷는 것이야말로 두뇌 회전에 가장 좋은 일”이라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강조했다.

걷거나 발을 사용하는 단순작업은 뇌 세포를 임전(臨戰)상태로 만들며 이 상태가 뇌 세포를 긴장시키면서 뇌에 피와 산소를 더 많이 공급한다. 당연히 뇌의 활동도 좋아진다. 실제로 걸을 때는 뇌 세포 가운데 약 10%가량의 기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또한 동양의학에서도 걸으면 신체의 발전소에 해당하는 내장이 자극을 받아 에너지를 낸단다. 이 에너지가 변전소에 해당하는 뇌로 흐르면, 뇌가 이것을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하게 되어 머리가 맑아지고 기발한 착상도 떠오르게 된다고 한다.

해지기 전에 걷는 산은 더더욱 적막하다. 불암산 공원입구로부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간간이 들리는 산새들의 지저귐, 까치들의 장난치는 모습과 희롱하는 소리, 미미한 바람소리. 대부분의 대도시 사람들은 낮 시간동안 도시의 한 복판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생존경쟁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소리도 생존경쟁도 이곳에는 없다. 아예 없다.

비교적 빠르게 등산하는 내 이마에 산들바람이 스치면 발걸음은 더 가벼워진다. 자연미가 살아있는 옛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산은 호젓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시간이다. 아니, 모두가 다 자연 그대로다.

완만한 오름 길이 시작되어 은근한 오름 길을 오르다보면 여유 있고 넓게 생긴 바위암반을 만나는데 그곳을 폴짝 뛰어 무사히 통과한다. 돌계단을 내려가 다시 돌계단을 오르니 계단이 많아 약간 힘이 든다.

이 돌계단을 통과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도 보이고 조심만 하면 위험하지 않는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앞으로 가서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곳에서는 아내의 손을 잡아끌어 올려준다. 중간 중간에 설치되어있는 로프를 잡으면서 산을 오르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때로는 상체를 구부리고 엉금엉금 기어서 바위를 지나는데, 바위를 건너뛰어 올라가야 되는 곳에서 담이 약한 사람은 밑으로 내려온 후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웅장한 바위 주변에는 소나무 군()이 생명력 있게 자리 잡고 앉아있다.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듯 소나무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산길을 걷다보면 소나무뿐만 아니라 산 벚나무, 싸리나무, 은사시나무, 산초나무, 진달래나무, 물오리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아카시아나무 등과 마주친다.

이때 가만히 산행하면서 각종 나무들이 내뿜는 향을 맡아 보라. 그윽한 산 냄새가 더욱 깊어진다. 피톤치드라고 불리는 식물의 이 향은 사람의 몸에 흡수되면 피부를 자극해서 신체의 활성을 높이고, 피를 잘 돌게 하며, 심리가 안정되는 등의 작용을 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피톤치드의 효과를 톡톡히 보려면 산 중턱이 좋고,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일사량이 많으며, 온도와 습도가 높은 오전 시간대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특히, 소나무가 내뱉는 달콤 쌉싸래한 향을 맡으면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열 배나 강하게 피톤치드를 발산하는데, 송편에 솔잎이 들어간 이유도 향긋한 향 이외에 세균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조상들의 놀라운 예지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내 손에 솔잎이 닿으면 그 잎을 몇 개 따서 씹어본다. 입안에 감도는 그 알싸한 냄새. 중학교 시절, 2시간 이상 걸려 통학하던 길에서 마주쳤던 소나무와 솔잎의 향수가 60대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 정상(頂上)을 차지한 능선 상으로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바위 봉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가을은 산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정상의 그 위풍당당하고 웅장한 바위꼭대기에 오르면 시야가 툭 트이면서 조망이 몹시 좋다.

뿐만이 아니라 여과 없이 쏟아지는 가을 햇볕이 산 봉오리에 불어오는 바람과 어우러지는 산뜻한 가을 오후가 나는 더욱 좋다. 하늘이 유난히 높고 절정을 맞는 가을은 그 옷 색깔이 노랑과 빨강으로 온통 요염한 자태를 자랑한다. 아니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굽어 살피면 수많은 아파트와 동네의 살림집들이 보이고, 집으로 향하는 차들의 행렬도 보인다. 이곳에서 숲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조금씩 내뱉는 복식 호흡을 할 때, 밀려오는 상쾌함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윽한 산 냄새가 더욱 깊어진다.

동중정(動中靜)이라고 했던가?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고요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소중하다. 짧은 명상의 시간도 가져본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성찰의 시간을 허락하며 교만을 겸손으로, 인색함을 관대함과 너그러움으로, 마음그릇을 커다랗게 하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해준다. 산은 이래서 좋은가 보다.

이 아기자기한 경치로 마음이 즐겁고, 공짜 삼림욕을 실컷 하며 걷는다. 하루 동안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내일을 위한 희망에 부풀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어찌 이것뿐이랴. 생에 대한 환희가 밀물처럼 엄습해 와 원수도 사랑하고픈 마음이드는 것도 바로 이때다. 숲은 우리의 오감, 즉 눈, 코, 입, 귀, 피부를 만족시키기에 정서적으로도 산림욕이 좋다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콘크리트와 벽돌 건물에서 대부분을 보내는 생활인들에게 등산할 것을 자주 권한다.

우리가 운동을 하면 땀이 난다. 땀이 나지 않는 운동은 이미 운동이라고 할 수가 없다. 땀은 체내의 찌꺼기를 발산시킨다. 건강의 비결 중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는 가운데 땀을 흘리는 것보다 더 좋은 비결은 없다. 운동과 산소와 땀은 건강의 3대 조건이라고 한다. 운동은 만병통치의 보약이다. 등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일찍이 위대한 사상가 루소는 인간이 건강하려면「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바 있으며, 유명한 문학자이며 자연과학자인 괴테는「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진 만큼 병과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자연에 관련된 글들을 읽으며 자연과 보다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식물이, 꽃이 선사하는 향을 맡으며, 여유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체득하는 것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만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시골할머니 손처럼 억세고도 억센 고목의 나무줄기에서 보드라운 새순이 돋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군락을 이룬 진달래꽃들을 스쳐지나가면서 봄의 향기를 느끼고, 다람쥐나 청설모가 재빠르게 지나가면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한다. 건강을 잃은 어느 환자가 이와 같은 숲 속의 암자 같은 곳에서 스님과 6개월 정도 생활하다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회복해 도시로 다시 나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산은 이처럼 공해로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최고의 피난처이며 최고의 휴양소가 아닐까 싶다.
하산하는 길에는 으레 약수터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페트병에 물을 담는다. 두 손을 모아 하염없이 흐르는 물로 세수를 할 때 느껴지는 피톤치드는 등산의 매우 좋은 효과 가운데 하나다. 인근의 윗몸 앞으로 굽히기를 하는 운동기구에 다가가 양발을 높이 올리고 머리를 밑으로 오게 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백만장자도 부럽지 않다. 부는 바람에 따라 몸피를 흔들어대는 나무 이파리들과 그들이 내뱉는 향을 맡으며 인간사를 헤아릴 때면 모든 게 기쁨의 연속이고, 감사의 연속이다. 이때 양팔을 벌린 채 깊은 호흡을 해 보라.

세상은 온통 내 것이 된다. 아니, 내 품안에 품기는 느낌이 든다. 비 개인 뒤의 상쾌함과 견줄 만 할까? 사실, 가을이 아니고, 햇빛의 양도 적고, 습도가 낮으면 또 어떠랴. 산을 내려오는 가운데 길을 걷다가 보게 되는, 약수터의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이웃의 모습은 정겹다. 더 나아가 아내가 반가이 맞아주는 우리 집은 거룩 그 자체이다. 나의 평화롭고 조용한 집에 돌아와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비누냄새가 풀풀 나는 깨끗한 침대에 누웠을 때 나는 작지만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2002년 10월 어느 날에 이 재 남 씀-

 

 

 

 

불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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