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4)-「이태준 열사」를 기념하는 이태준 기념공원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1. 21. 08:12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 바로 아래 이태준 열사의 기념공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 바로 아래 이태준 열사의 기념공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 바로 아래 이태준 열사의 기념공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 바로 아래 이태준 열사의 기념공원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 바로 아래 이태준 열사 소개서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 바로 아래 이태준 열사의 묘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에서 바라보이는 시내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에서 바라보이는 시내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승전기념탑에서 바라보이는 시내



「이태준 열사」를 기념하는 이태준 기념공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자이산의 전쟁 승전기념탑이 우뚝 서있는 산위에 오르면 도심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초원으로 유목민들의 전통가옥인 겔 촌이 펼쳐져 있다. 자이산 바로 아래 몽골국기와 함께 펄럭이는 태극기, 한국 사람의 눈길이 멈추는 이곳은 애국지사 이태준 열사를 기리는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에 한국인의 이름을 딴 공원이 있다.
젊음을 바친 투사였지만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태준 열사를 기념하는 공원이다. 李 열사를 몽골사람들은 학교에서도 배울 정도로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독립운동가 대암 이태준은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11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도산 안창호가 만든 비밀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에서 활동하던 중 1912년 세브란스 의학교 1년 선배인 김필순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몽골에 비밀군관학교 설립을 계획한 훗날 임시정부 부주석, 김규식의 권유로 이태준 열사는 다시 몽골로 향하게 되었다. 이태준이 몽골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동의의국이란 병원을 세워 절반이상이 성병에 걸려있는 몽골국민들을 치료했다.
마지막 국왕 보그드 칸은 그를 주치의로 임명하고 1919년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는 국가최고훈장을 수여했다. 몽골의 슈바이처 이태준의 기념관을 추진하면서 2001년 7000평방미터 규모의 공원 부지를 몽골정부가 제공하였다. 한국인인 이태준 열사를 기념하는 이공원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고급주택단지 내에 있으며 전승 전망대 바로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어 몽골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지난 2006년에 연세의료원이 공원 한편에 몽골전통가옥양식으로 작은 기념관 하나를 지었으나 실제 묘 터나 영정을 찾지 못해 가묘를 만들었다. 이태준 열사는 1921년 일본과 손을 잡은 러시아의 백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몽골과 수교를 맺은 후에야 몽골정부로부터 무상으로 공원 부지를 제공받고 이 공원이 처음 조성될 당시 강가가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였다. 그러나 최근 공원주변에는 아파트공사가 한참이어서 주변 환경은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이곳을 기념하는 사진을 여러 컷이나 찍어뒀다.
이제 저녁식사를 하려고 버스를 타고 옮겨간 곳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음식점, 이화정이다. 소고기불고기, 돼지고기 김치찌개, 양 갈비 불고기 등을 실컷 먹고 후식으로는 식혜 한잔을 마셨다. 이화정에서 식사를 마치고 옮겨간 칭기즈칸(Chinggis Khaan) 호텔의 504호실에 여정을 풀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샤워를 마치고 8시 40분경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