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말에 지어진「바위 사원」이란 뜻을 가진「갈 비하라」는 폴론나루와의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왕, 1153~1186에 다스렸던 파라카라마바후 1세가 세웠으며 한 때「북쪽의 사원」이라고 알려졌다.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조각한 것으로 가장 남쪽의 조각은 앉아있는 부처상이다. 부처의 자리는 사자와 번개로 장식되어 있고 부처의 머리 뒤에는 후광이 조각되어있다. 두 번째 조각은 바위에 굴을 파고서 그 안에 조각해 놓은 다양한 신상들이다.
브라흐마와 비쉬누 등이 앉아 있는 부처를 둘러싸고 있는 조각상으로 동굴 안에는 한 때 동굴을 장식했던 벽화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세 번째 조각은, 드물게 보이는, 팔짱을 끼고 있는 부처 입상이다. 이 얼굴은 고요하고 모든 긴장을 벗은 편안한 모습이다. 7m 높이로 한 때 부처의 제자인 아난다의 제자, 불경을 결집할 때「나는 이같이 들었다」라며 부처의 가르침을 언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조각, 즉 가장 북쪽의 것은 14m 길이의 누워있는, 열반에 들어가는 순간의
모습을 묘사한 부처로 머리 아래의 베게에 있는 약간의 패인 곳과 발바닥에 있는 표시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이 불상들이 모두 벽돌로 지은 건물로 보호받고 있었다고 하며「문화 삼각지계획」은 이를 복구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여러 사원에서 신자들이 팔리어로 된 경을 암송하거나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자들 모두 학교와 사원의 일요불교학교에서 팔리어를 배워「담마파다(법구경)」등 팔리어로 된 경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불교는 시암종, 아마라뿌라종, 라만냐종 등 3개 종파가 있으며 스님들은 약 3만 명 정도다. 스님은「삭발할 때 눈썹까지 미는지, 가사를 입을 때 양쪽 어깨를 다 덮는지 여부 등 약간의 관습차이만 있을 뿐 3개 종파 모두 상좌부 전통으로 계율이나 교리에는 차이가 없다」면서 「상좌부 불교국가 중 라오스와 미얀마는 수행, 태국은 계율, 스리랑카는 교학의 전통이 강하다」고 소개했다.
부처의 가르침은 열반 후 첫 결집에서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으로 정리돼 스님들의 암송으로 전승되다가 기원전 1세기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싱할리어로 기록돼 문자화됐으며 5세기에 붓다고사 스님에 의해 팔리어로 번역돼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대승불교는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행하는 종파인데, 이 대승불교보다 더욱 엄격한 절제를 강조하며, 니르바나 즉 열반으로 가는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종파가 소승불교이다.
고대도시 폴론나루, 12세기의 바위사원으로 갈비하라의 와불상
고대도시 폴론나루, 12세기의 바위사원으로 갈비하라의 불상
고대도시 폴론나루, 12세기의 바위사원으로 갈비하라의 와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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