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휴가

15.백제의 마지막 122년간 수도였던 부여

달리는 말(이재남) 2020. 9. 11. 07:12

백제의 마지막 122년간 수도였던 부여  

이제는 고대왕국 백제의 마지막 122년간 수도였던 부여를 향하여 달려갈 참이다. 한참을 달려 부여에 들어서니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부소산성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를 통과하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의 모습

 

부소산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부여의 진산(고을의 뒤에 위치하여 그 지역을 보호하는 산)으로 해발 106m 이며, 동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다. 남쪽은 산세가 완만하여 앞쪽에 시가지를 이루고 북쪽은 가파르며 백마강과 맞닿았는데, 산성을 비롯하여 삼충사, 영일루 군창지, 반월루, 사자루, 낙화암, 고란사와 절터, 집터 등 백제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부소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보이며 그 이전에는 무어라 불렸는지삼국사기등 역사책에 기록이 없어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의 뜻이 있어 부소산은솔뫼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흥수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 터였던 군창지가 있다.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문-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 낙화암(落花巖), 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성왕 16)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 보다 먼저 500(동성왕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단다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신라시기에 축수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부소산 남쪽, 백제의 왕궁 터로 추정되는 이곳은 요즈음도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왕궁 터를 지나 사비 문으로 입장하면 부소산이고, 이곳에 부소산성이 있다. 사비 문을 들어서서 삼충사를 시작으로 영일루, 군창터, 반월루, 사자루, 궁녀사, 백화정 등을 차례로 거쳐 제일 마지막으로 서는 곳이 삼천궁녀가 사비수에 꽃잎처럼 몸을 던졌다는 곳, 낙화암이다. 낙화암 아래에는 약수로 유명한 절 고란사가 있다.  

부여의 부소산성

부여의 부소산성

부여의 부소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