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추측만 무성하던 왕궁터, 왕궁리유적지
추측만 무성하던 왕궁터, 왕궁리유적지
왕궁리유적지는 금마의 미륵사지(彌勒寺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유적지로 과거 우리 민족의 정치·문화의 중심지로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익산 왕도설은 많은 문헌들이 익산이 한 국가의 왕도였음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설에만 의존한 신비로운 설화와 같은 이야기로만 여겨져 왔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출토유물
그러나 왕궁리 유적지의 발굴로 인해 이제 그 설화와 같은 이야기가 역사의 사실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익산이 문헌의 기록대로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역할을 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의 가장 객관적인 증거자료이다. 왕궁리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추측만 무성하던 왕궁터가 아니라 정말 백제 왕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유물들이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사적 제408호로 지정된 왕궁리 유적지로서 백제 무왕 때 조성된 웅장한 궁궐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출토유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출토유물
지금까지 16여 년 동안 발굴한 결과 왕궁리 유적은 백제 30대 왕인 무왕 때 만들어진 궁성유적, 즉 왕궁 터였다는 것이다. 발굴 결과 왕궁터는 동서로 240여m, 남북으로 490여m에 이르는 직사각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규모의 성벽은 왕궁 조성시에나 가능하단다. 더욱이 건물지들이 일정한 공간비율로 배치되어 있고, 건물과 건물사이에 조성된 정원이나 석축배수로 등의 공간 비율을 살펴볼 때 철저히 계획된 설계에 의해 세워진 왕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시대 왕궁의 어느 것보다도 완전한 형태의 궁성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제 중흥의 꿈을 담고 지어진 웅장한 궁궐로 이곳이 왕궁 터라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유물로 대표적인 것은「5부명인장와」이다. 백제시대에는 상부, 중부, 하부, 전부, 후부의 5부 행정체제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들 5부 이름이 찍힌 기와가 발굴된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출토유물
정림사지오층석탑과 익산미륵사지석탑
또한 수도를 의미하는「수부」라는 이름이 찍힌 기와도 발굴되었다. 누가 사는 건물인지에 따라 기와를 달리 쓰던 백제시대의 건축양식을 볼 때「5부명인장와」나「수부명인장와」가 나왔다는 것은 이곳이 바로 왕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고급 중국제 청자편과 주전자형 토기, 변기형 토기 등 3,0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왕궁에서 사용하던 유물들이 많아 왕궁 터라는 사실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리고 대형 화장실터가 세 개나 발굴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휴지대신 나무막대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왕궁리 유적지에서 출토된「5부명인장와」나「수부명인장와」
왕궁리 오층석탑 출토유물
화장실터에서 30cm가량의 나무막대기 여러 개가 발견되었는데, 성분을 검사해보니 뒤처리용이었다는 것이다. 전시실에 그려진 화장실 복원도를 보면 아래는 수로로 연결돼 물이 흐르고 있고, 위는 여러 명이 걸터앉아 일을 볼 수 있게 재래식화장실처럼 나무막대기로 연결 되어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유적지 전시관 내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의 왕궁리 유적지
그 옆에는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여러 개 놓여있는데 그 안에는 뒤처리용 막대가 들어있다. 대형화장실 아래로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고, 그 설계방식이 마치 요즘 수세식화장실의 기술과 같았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이는 백제시대의 놀라운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왕궁리유적 출토유물 전시실」에는 토기 및 기와, 금과 유리로 만든 가공품, 중국제 청자편 등 1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은 처음 황량한 빈터를 보았을 때의 실망스러움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화려하고 웅장한 왕궁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안에서 소박하며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과 함께 무왕이 백제 중흥의 꿈을 펼쳤을 것이다. 「왕궁리 유적지」내부는 굉장히 깨끗하고 짜임새 있는 전시관이다. 또한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곳은 주차장도 넓고 화장실도 쾌적하다. 5층 석탑은 자로 잰 듯 정확한 조형미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전시관도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입장료도 무료여서 큰 어려움 없이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