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여행(18)-페르세폴리스의 유적들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쉬라즈의 카림 칸성 내부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크세르 크세스문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박물관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박물관앞의 필자의 아내, 이경자여사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벽화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벽화
페르세폴리스의 유적들
출입문은 동서남북에 하나씩 있는데 북쪽과 동쪽에 독특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가장 큰 공간은 사방 70m에 이르는 백주홀로서 총 100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이 거대한 홀은 황제 집무실 혹은 회의장으로 추정하고 있다. 「겨울 궁전」이라는 의미의 「타차라」는 다리우스 1세가 만든 대리석 궁전으로 일명「거울의 집」이라고도 불리며 왕이 기거했던 곳이다.
그 밖에 크세르크세스 1세가 기거했던 궁전「하디쉬」가 있고 그 남쪽에는 왕비의 거실인 「하렘」이 위치하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 한가운데 위치한 트리필론은 회의실로 동남북 세 방향에 문이 하나씩 있는데, 동쪽입구에는 속주국의 사신들이 다리우스 1세의 옥좌를 받드는 상들이 있고, 북쪽 계단에는 페르시아인과 메디아인 들의 회의모습을 새긴 부조가 남아있다.
동남쪽에는 페르시아 원정당시 알렉산더가 당나귀 1만 마리와 낙타 5천 마리로 창고의 보물들을 실어갔다는 보물창고가 있었다. 박물관에는 페르세폴리스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당대 문명의 교류를 보여주는 각종 도자기와 장식품, 동전 등이 보였다. 백구 궁전의 서쪽에 있는 왕이 단검으로 짐승을 찌르는 조각상은 왕이 적을 제압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남쪽의 옥좌에 앉은 왕의 조각상에는 옥좌에 앉은 다리우스 1세와 아들 크세르크세스 아래로 많은 신하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는 28개의 속주국 사신들의 옷차림이나 준비한 선물도 각양각색이다. 아르메니아는 말, 레바논은 금가락지, 바빌로니아는 소, 인도는 향수병, 에티오피아는 상아를 바치는 모습을 새겼다.
이렇듯 각국 문명은 앞 다투어 페르시아 대제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는 다리우스 1세 때인 기원전 518년에 짓기 시작했으나 5대인 손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때(기원전 469년경) 거의 완성되었으니 약 60년 동안 지은 셈이다. 그리고도 약 150년에 걸쳐 후세의 왕들인 크세르크세스 1, 2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 2, 3세에 의해 증축되었다.
화려한 계단, 부조, 거대한 기둥과 같은 인상 깊은 유물들을 보면 페르세폴리스가 아케메니스 제국의 가장 뛰어난 보물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니스 제국이 지배했던 모든 나라들의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결합해서 만들었지만, 그 사상과 디자인은 페르시아적인 면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건축과 예술적으로 뛰어난 기질은 충분히 세계적인 면으로 보여 고대의 것 가운데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섞어서 만든 것은 세계에서 페르세폴리스밖에 없단다. 이렇도록 현존하는 고대동서양 문명 즉 기자의 피라미드, 로마의 콜로세움, 앙코르와트와 버금가는 곳으로 동양문명 중에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약 200여 년간 한 세대를 풍미한 이 웅장하고 화려한 이 왕도는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동정 군이 불을 질러 아깝게도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약 2시간 반 이상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니 배가 고파왔다. 배고픔을 달래려고 가까운 곳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양고기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