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여행

이란여행(17)-페르시아의 왕도, 페르세폴리스

달리는 말(이재남) 2015. 2. 11. 06:50

 쉬라즈의 다리우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의 암벽묘인 낙쉐르로스탐

 쉬라즈의 다리우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의 암벽묘인 낙쉐르로스탐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박물관에서 만난 이란여인들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크세르 크세스문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의 약도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현지인가이드와함께
 

                                                                     페르시아의 왕도, 페르세폴리스

 

여행을 시작한지 나흘째 되는 날, 아침은 7시에 모닝콜이 울릴 예정이지만 일찍 일어나 호텔 주위를 산책을 하며 돌아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아침식사는 맛이 좋아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많이 갔다가 먹어뒀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 문화재 중 최초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재로서 고대 아케메니드 제국의 성공을 구현하고 있다. 전용버스는 호텔을 출발하여 한참을 달려, 페르세폴리스의 입구에서 내렸다. 입장권을 끊어 양쪽의 111개 돌계단이 있다는 유적지입구로 걸어갔다.

쉬라즈는 페르시아 어원이 된 Fars주의 중심도시로서 주변지역이 아카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왕 이후 및 혼란기의 잔드 왕조(기원후 18세기)때 수도였던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다. 다리우스 1세의 통치 시대(BC521~486)에 페르시아 제국은 중근동 지역을 통일하였는데 그 범위가 동쪽의 인더스 강에서 나일강에 이르는 대제국이었다.

대왕은 많은 부족과 다양한 인종을 다스려야 했다. 영토를 20여 개의 주로 나누고 각 주는 황제가 임명하는 총독에 의해 다스려졌다. 이들에게는 외교문제에서 부터 행정, 재정권의 행사까지 누릴 수 있는 자치권이 주워졌다. 페르세폴리스 궁에서 새해맞이 행사와 각국의 사절단을 접견하는 등 주로 행정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진 곳이다.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괴되어 기둥과 벽면 등 일부만이 남아 있으나 당시 페르시아의 국력을 절감케 하는 역사 깊은 유적지이다. 당시의 페르세폴리스는 18m에 이르는 벽면에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유적지 입구에 도착하니 커다란 계단을 양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입구 왼쪽의 111개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데서 시작되는데 돌 한 덩어리로 한 계단씩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한 덩어리를 나눠서 다섯 계단으로 만든 것이다. 외국의 중요한 사신들이 도착할 때마다 계단의 꼭대기에서 나팔을 불어 사신이 도착했음을 알렸으며 계단 높이를 말을 타고도 불편함 없이 오르도록 10cm 정도로 했다.

나지막한 계단을 오르면 한 쌍의 황소가 궁성 정문의 양옆에 세워져 있다. 만국의(크세르크세스)문의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라마수의 조각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었는데, 라마수의 얼굴은 사람, 새의 날개, 소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인면유익의 황소상이다.
이 2쌍의 라마수의 상은 하나는 동쪽을, 다른 하나는 서쪽을 향하고 있고 라마수의 한 날개에는 크세르크세스 1세에 관한 명문이 3가지 언어로 새겨져 있었다. 만국의 문을 지나니 의장대 사열로와 연결되어있고 사열로의 왼쪽에는 행복을 의미하는 전설적인 새, 호마 상이 지키고 서있다.

이곳의 우측으로는 매우 크고 아름다웠던 건물인 아파다나 궁전과 백구 궁전의 흔적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파다나 궁전은 다리우스 1세 때 짓기 시작해서 아들 대에 완공했는데 외국사절을 접견하는 알현장이나 노루즈(신년)때 제사장으로 쓰였단다. 레바논 삼나무로 지은 천장을 받치던 높이 20m의 72개 기둥 가운데 남은 13개만 봐도 웅장했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너른 공간을 석조기둥으로 떠받치는 공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했다. 페르시아제국은 동으로는 인도까지, 서로는 그리스까지, 남으로는 이집트, 에티오피아까지, 북으로는 러시아까지 그 세력을 넓혔으며 각기 다른 30여 민족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고, 이 거대한 제국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