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여행(12)-페르시아의 본영, 파사르가데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타지키스탄 후잔드의 소그드 지역 역사박물관 내부(알렉산더대왕이 왕복을 벗어 고레스 왕의 묘에 덮어주고 있는 모습)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주변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주변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주변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주변
야즈드에서 쉬라즈로 가는 도중에 만난 4500년된 향나무
페르시아의 본영, 파사르가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이는 사막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사막의 하늘을 날고 있는 참새 떼를 여러 번 만났다.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사막뿐인데 저 참새 떼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기에 저렇게 떼를 지어 다닐까? 궁금하다. 2시간쯤 달렸을 때 휴게소에서 쉬고 가겠다고는 하였으나 막상 버스에서 내려보니 4500년이나 됐다는 향나무가 필자일행을 맞이한다.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고 향나무를 구경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후 5시경에 도착한 「파사르가데」는 쉬라즈로부터 120km 떨어진 황야에 위치해 있다. 2004년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원래 아키메네스 왕조(고레스 왕부터 시작된 약 200여 년간의 왕조)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던 곳으로 권위와 역사의 산실이기도 한 곳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로 그 본래 흔적은 사라지고 그 일부의 흔적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지금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우선 도착하여 사방을 둘러보니 나지막한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여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와 같은 분지형 덕분에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온화하여 사람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 한 왕조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파사르가데」는 페르시아의 본영이란 뜻으로서 페르시아를 창건할 당시의 첫 왕도로서 다리우스 1세가 수도를 수다로 옮길 때까지 페르시아제국의 정치, 문화, 군사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기원전 539년 왕조를 세운 고레스 대왕은 메디아군을 격파한 후 이곳에 왕궁을 지었다.
2개의 궁전 터, 조로아스터교의 신전, 솔로몬 감옥, 그 외 각종 모임장소 등 당시의 웅대하고 화려한 건축의 유적들이 발굴되어 그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었으나, 워낙 오랜 세월이 흘러 현재 발굴된 유적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단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유적은 멀고 먼 옛날 페르시아대제국을 호령했었던 첫 왕의 무덤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리를 반겼다.
하얀 대리석으로 6층의 계단을 쌓아올려 직사각형 석실을 만들고 지붕을 비스듬히 얹어놓았다. 우리나라의 장군총과 엇비슷했다. 고레스 대왕은 그의 치세 동안(BC 559~530)일부 피지배 민족들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했으며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생활을 존중하는 정책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BC538년에는 칙령을 발표하여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언급하고 그 칙령이 공포된 후 페르시아 왕실은 유대인들이 공동체 재건을 위한 정치작업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BC331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고레스 대왕의 묘까지 파괴하기 위해 이곳 파사르가데 까지 왔었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나 고레스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지만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 점령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점령당할 것이니 내 몸을 덮고 있는 흙(묘)에 손대지 말라.”는 고레스 왕의 묘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는 감동받아 훼손하지 않고 왕복을 벗어 고레스 왕의 묘에 덮어주고 돌아갔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