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잊지 못 할 중남미 여행(48)-잉카문명의 보물창고, 황금박물관
페루의 리마
페루의 리마
페루의 리마
페루의 리마
페루의 리마
페루의 리마
페루 리마의 황금박물관입구
페루 리마의 황금박물관입구
페루 리마의 황금박물관입구
페루 리마의 황금박물관입구
페루 리마의 황금박물관입구
페루 리마의 황금박물관입구
잉카문명의 보물창고, 황금박물관
점심식사를 하려고 한인이 운영하고 있는「노다지」식당 앞에서 버스가 멈춰 섰다. 메뉴는 우거지된장국으로 너무 맛있게 많이 먹어 배가 몹시 부를 정도다. 후식으로 주는 귤을 먹고 나와 일행을 실은 버스는 황금박물관을 향하여 달렸다. 리마를 찾는 사람들은 잉카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리마가 자랑하는 사설박물관인 황금박물관을 찾는다.
수만 점에 달하고, 종류수도 그 어떤 국립박물관보다도 엄청나다. 좋은 물건은 황금박물관에 모두 옮겨져 있는듯하다. 잉카문명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치․사회의 기구편성에 나타낸 독특한 기술이다. 사회적으로는 신성한 절대군주 잉카를 받들고, 친족인 지배층과 일반평민으로 구성되는 계층사회를 형성하여 중앙집권적 전제정치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평민을 위한 사회보장이 완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잉카의 정치체제를『신권적 사회주의』라든가『사회주의 제국』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황금박물관은 모치카, 치무, 비쿠스문화의 유산인 금, 은 세공품, 직물들, 구체적으로 목걸이와 장례식 때 사용되던 가면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물들은 고대 페루의 발전된 금세공과 야금기술을 증명하고 있다. 리마 시 교외의 조용한 주택지 한구석에 짧지만 한없이 눈부시고 화려했던 잉카제국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황금이 많아 엘도라도(Eldorado)로 불렸다는 잉카제국의 황금박물관에 들러보니 풍요로웠던 잉카문명의 역사가 눈에 잡히는 듯하다.
박물관은 1층의 무기전시실과 지하의 황금전시실로 나눠져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금전시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잉카의 황금유물은 기원전 4세기에서 2세기까지 번성하던 비쿠스문명에 뿌리를 두었으며 그 후 차빈, 모체, 나스카, 와리, 치무를 거쳐 잉카문명기에 접어들어 만개했다.
잉카인들에게 있어 태양은 의심할 바 없는 신성한 숭앙의 대상이었고 황금은 바로 그런 태양이 흘린 눈물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와 반지에서부터 왕관, 악기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황금제품이다. 비옷까지 금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고도의 연금술이 잉카제국에 존재하였음을 잘 알게 된다.
또 황금으로 정교한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있는 두개골 유골은 잉카시대에 이미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있었음을 반증하고도 남는다. 역사와 고고학에 심취했던 실업가 미겔 무히카의 사립시설 덕이다. 황금박물관에서는 나스카문명에서 파라카스문명을 거쳐 잉카문명에까지 전수되고 고대 페루사람들의 문명변천사를 한눈에 열람할 수 있었다.
그의 잉카문명에 대한 고집스런 애정과 숭배가 황금박물관으로 집대성되어 잉카와 현세를 이어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앉은 자세로 표구된 페루인의 미라와 포로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 표구한 해골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잉카에게 있어 황금은 독이 되고 말았다. 풍부한 금은 유럽정복자들의 구미를 자극했고, 결국엔 2,500만 명의 대제국이 불과 168명의 정복자에 의해 무너지고 그 문명을 정복자들에게 내주는 비극을 불러들였다. 박물관 외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가능했지만 내부에서는 절대로 촬영불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