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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달리는 말(이재남) 2012. 12. 5. 12:10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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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핏빛으로 피고, 질 때는 모가지 째 떨어져 뚝뚝 진다. 그 낙화가 자못 처절하다. 그래서 병문안 갈 때 동백꽃은 들고 가기에 적절치 않다. 이른 봄 시인은 선운사(禪雲寺)로 동백꽃을 보러 갔나보다. 선운사는 시인 서정주(徐廷柱)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에 있는 절이다. 계절이 일러 동백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시인은 절 아래 막걸릿집에 주저앉아 하릴없이 막걸리나 마셨다. 넉살이 좋은 주모는 막걸리만 판 게 아니라 손님에게 제 육자배기 가락도 들려주었다. 목이 쉬어서 카랑카랑 쇳소리가 나는 소리에 실린 육자배기 가락은 애살스러우면서도 청승맞다. 우리 눈이 빛, 색, 선의 단순한 수신기가 아니듯 귀 역시 소리의 수신기만은 아니다. 귀는 소리를 끌어안으며 소리와 몸을 섞고 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소리는 귀청에 가 닿는 게 아니라 마음의 애잔한 부분에 가 닿아 녹아내린다. 낮술에 취해 듣는 그 가락의 청승맞음은 이 세상의 모든 굳센 것들의 마음을 녹인다. 아마도 동백꽃을 보러 왔다가 동백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게 된 시인의 마음도 녹였으리라. 이 시를 읊조려보면 어느덧 막걸릿집 여자의 신산스런 막살이의 켜켜에 더깨로 앉은 시름이 육자배기 가락으로 녹아 가만히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