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여행

이란여행(14)-李太白, 그는 과연 누구인가?

달리는 말(이재남) 2015. 2. 6. 06:04

 쉬라즈에서 130km 떨어진 고레스왕의 무덤이 있는 파사르가데

 쉬라즈의 카림 칸성 내부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묘소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 박물관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벽화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벽화

    쉬라즈의 페르세폴리스-벽화

 

                                                                      李太白, 그는 과연 누구인가?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명경같이 밝은 달....,” 그는 달을 순수의 극치인 명경으로 간주하면서도 결국은 현세에서 같이 놀던 유희의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인간은 유희의 단계를 벗어나 거울과 같은 마음으로 차원을 높이고자 하지만 이 시는 그런 단계로 이행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실존적인 고뇌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노래한 이태백(701~762),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선조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달에서 온 신선이라고 불리는 이태백은 중앙아시아의 쇄엽에서 태어났다. 쇄엽은 현재 키르키즈스탄 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키르키즈스탄의 일부지역을 포함해서 2천 5백만 명 이상의 타직인들이 지금도 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의 페르시아어를 쓰는 타직인들은 구소련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키릴 문자에도 익숙하지만, 구소련에서 독립한 90년대 이후 이 지역의 학생들은 페르시아문자를 배우고 있다. 이란 동부의 코라손 주와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권을 합쳐 대()코라손 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태백은 당시 코라손 권 출신으로 5세 때 부친과 함께 사천성의 강유(江油)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친이 코라손의 지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이태백은 어릴 적부터 시()에 대해 조예가 깊었으며 수많은 시를 지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하면서 25세 때 사천성을 떠나 오랜 세월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으며,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사회적인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중국학자들이 쓴 자료들을 통해서 이태백이 살았던 시대상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외국인들 가운데에는 무역을 위해 온 사람들, 특히 페르시아 상인이 수적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중 일부는 장기간 당나라에 체류하기도 하였다. 두보가「염여」라는 시에 「뱃사람 낚시꾼이 노래를 부르고 고객(페르시아상인)은 눈물을 적신다.」라는 시구가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사천(촉)지방에까지 서역의 상인이 진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당의 중심부에서도 서역 상인들의 자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구당서」124권 「전신공」에 의하면 상원 원년(760년)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진압군과 반란군이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수많은 서민과 상인들의 재산이 약탈을 당하였고, 당시에 양주에 체재하고 있던 페르시아상인들도 그 와중에 휩쓸려 들어가 수천 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반란사건에 연루되어 잡혀 들어간 사람 수만 해도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무희들이 당나라에 들어왔으며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권 춤곡이 크게 유행하였다. 서역의 여성들은 대부분 페르시아 계통이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