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여행

영원히 잊지 못 할 중남미 여행(10)- 마야시대의 유적지 체첸이사

달리는 말(이재남) 2013. 11. 14. 05:46

                                                                         

 쿠바 아바나의 중앙공원

 쿠바 아바나의 국회의사당 앞

 쿠바 아바나해변의 마차 앞

쿠바 아바나의 모습 

 쿠바 아바나의 해수욕장

 쿠바 아바나의 정원식당의 5인조 악단

 멕시코 마야도시 91계단의 피라미드

 멕시코 마야도시 희생의 샘(세노테)

멕시코 마야도시 91계단의 피라미드

 

 

마야시대의 유적지 체첸이사


 

 

식사를 마치니 덥다. 그러나 곧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옮겨가니 유적지의 주차장에는 벌써 많은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광경이 눈에 뜨인다. 정문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는데, 사진촬영을 하는 모든 카메라의 사용료를 더 내야 한단다. 미화 3달러를 내고 사용티켓을 발급받았다.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다.

그러나 기념촬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는가? 5분여를 걸어 들어갔다. 체첸이사도 다른 마야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정글 속에 있었다. 그간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 익히 봐 왔던 91계단 피라미드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91계단의 피라미드, 쿠쿨칸의 피라미드라고도 하는 엘 카스티요(성채)는 길이 55.3m의 정사각형, 높이 23m, 9개 층으로 사방벽면에 4개의 계단 구조를 갖춘 피라미드형의 신전으로 그 자체가 마야의 달력을 나타낸다.

이 피라미드 역시 제물을 바치는 제단의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4면이 45도 각도의 91계단으로 되어 있는데다 중앙 꼭대기에 하나의 계단이 첨가돼 있어 1년을 나타내는 365일을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 북쪽 계단의 밑에서 꼭대기에 이르는 돌난간이 해마다 춘분과 추분 하오 4시만 되면 거대한 환영을 연출한다고 한다.

태양의 빛과 그림자가 오묘한 조화를 이뤄 마치 커다란 뱀이 꿈틀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환영은 정확히 3시간 22분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또한 하지와 동지 때 피라미드에 비춰지는 태양의 그림자로 농사의 시작 시즌과 끝 시즌을 가늠했다는 마야사람들의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91계단의 피라미드에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얼마 전 미국인 한사람이 경사가 급한 그곳에 올라가다 미끄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은 금하고 있다.

애석한 일이지만 별수가 없다. 전사의 신전 앞에는 1000개의 돌기둥들이 있고 계단은 36계단이다. 안에는 차크 몰신의 형상이 앉아있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 잡고 있다. 상체를 45도 각도로 들고, 발목을 엉덩이에 붙인 채 두 무릎을 바로 세웠고, 얼굴은 왼쪽으로 향한 채 끝이 안 보이는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두 손은 가지런히 모와 배 위의 접시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이 모습에서 산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연상되는데 마야사람들은 신에게 심장을 바칠 사람의 제물을 공놀이 장인 펠로타경기장에서 구했다. 신성한 공놀이에서 승리한 사람은 곧 자신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승자가 죽음을 영광처럼 받아들였던 마야인의 심성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비록 91계단의 정상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전사의 신전, 펠로타 경기장 등 체첸이사의 유적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주변경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잔디가 깔린 광장 서쪽 끝에 자리 잡은 너른 구기경기장, 경기장을 가운데 놓고 60m의 간격을 둔 수직벽면이 동서로 마주하고 있다.

남북으로는 작은 신전이 있었는데, 여기서 펼친 경기는 오락이라기보다는 종교의식이었단다. 7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고무로 만든 볼을 쳐서 벽 위에 있는 둥근 원 안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경기인데, 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가슴과 발만 사용해야만 했다.

귀족자제로 편성된 구기 팀이 경기 후, 이긴 팀의 주장을 제물로 바쳐졌다고 한다. 구기경기장의 벽체는 상하 두 부분으로 되어있고, 밑 부분에는 경기의 모습을 그린 부조가 아직도 남아있다.

벽의 상부 수직부분은 약간 안쪽으로 경사져 있었는데, 선수들의 경기를 하면서 내는 소리가 150m 끝까지 잘 들리도록 음향효과를 살린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마야사람들의 지식과 기술이 대단하였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야사람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신념에 잠시 숙연해짐을 느낀다.

희생의 샘이라고 불리는 세노테는 지름이 50∼60m, 깊이가 40m에 이르는 큰 연못이다. 1924년 미국인 고고학자 에릭 톰슨이 발굴 작업을 실시한 결과, 각종 도자기, 흑요석 등과 함께 인간의 뼈가 나왔다는 사실은 가뭄이나 흉년이 들었을 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세노테는 농사지을 물을 대는 저수지 기능을 했을 뿐 아니라 비의 신차크가 산다고 여겨졌던 「성스러운 셈」이다. 우리는 걸어서 이 희생의 샘에 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기념촬영을 했다. 스페인이 정복하기 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침했던 많은 문명 가운데 가장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마야문명이다. 이들은 조직적인 경제며 천문학, 수학,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조각이나 문학, 춤, 그림 등 예술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잉카문명과는 다르게 문자가 있었던 마야문명이 이렇게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은 순전히 스페인 침략자들 탓이다. 그들이 신전이나 비문에 새겨진 그림문자들을 거의 전부 뭉개고 없애버렸다. 그뿐이겠는가! 마야역사와 문화발전,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옛 문서들도 도서관까지 소각해버린 것이다.

마야유적지를 관광하고 칸쿤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3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유적지를 돌아보는 약 2시간이 너무 덥고 피곤했는지 공항으로 향하는 전용버스에 앉아 일행은 거의 모두가 끄덕끄덕 졸고 있다. 칸쿤 시내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일식도시락(초밥)을 사서 버스에 싣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 도착한 일행들은 일단 도시락을 먹고, 출국 수속을 밟아나갔다. 이곳의 출국과정도 까다롭기는 매마찬가지다. 출구 B11에서 오후 8시 50분에 탑승을 한 AM583기는 9시 25분에 활주로를 떠나면서 출발을 했다. 비교적 크지 않은 여객기의 19AB의 좌석을 우리부부는 차지하고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9시 50분 무렵 저녁 간식이 제공되었다.